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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 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고정희..... 그녀는 시대의 고통에 같이 아파한 시인이었다. 그런데 아깝게도 40대 초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떴다..

시읽는기쁨 2003.10.28

한 문이 닫기면 다른 문이 열린다

터에만 다녀오면 마음이 우울해진다. 안 갈 수도 없고, 가면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답답한 상황들과 마주쳐야한다. 대면하고 싶지 않은상황들과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한 때는 새 생활에 대한 꿈으로 부풀었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계륵(鷄肋) 신세가 되어 있다. 밀고 나가기도, 발을 빼기에도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이럴 때는 거기에서 한 발짝 물러나는 것이 상책이다. 내 의지를 떠난 상황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말 것! 그리고자꾸 뒤를 돌아보지 말 것! 오늘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생각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이다. 거기에 나오는 사랑스러운 여 주인공, 쥬리 앤드류스. 수녀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녀는 원장 수녀님에 의해 밖으로 퇴출(?) 당한다. 가방을 ..

참살이의꿈 2003.10.27

쓸쓸해서 아름다운 계절

터에 다녀오는 길에 영릉에 들리다. 쓸쓸해서 도리어 아름다운 계절..... 가을은 쓸쓸함과 아름다움이 기막히게 조화를 이루는 계절이다. 오늘은 눈물이 날 정도로 햇살이 눈부시다. 낙엽 지는 나무 아래서 어린 아이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푸르다. 옆의 한 아주머니 왈 "불경기라더니 그렇지도 않네." 그만큼 나들이 인파가 경내에 가득하다. 아무리 사는게 폭폭할지라도 이런 여유마저 없다면 삶이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그런데 연못의 잉어는 전혀 딴 세상이다. 관람객들이 한 봉지에 천원씩 사서 던져주는 먹이가 계속 하늘에서 떨어진다. "와, 쟤들은 배 터져서 죽겠다." 그냥 이리저리 지느러미만 움직이면 된다. 먹이를 구하기 수월해서인가, 쉼없이 먹어대기만 한다. 그래서 길이가 3m나 되는 놈도 있다고 한다. 누군가 ..

사진속일상 2003.10.26

따스함이 그립다

날씨가 싸늘해졌다. 따스한 온기가 그리운 때가 왔다. 그러나 물리적 온기보다는 마음의 온기, 인정의 따스함이 더욱 그리운 때이다. 인사동 찻집에서 저 등불을 보았다. 가스등 모양을 한 작은 등이었는데 참 따스하게 느껴졌다. 우리속에도 저런 마음의 등불이 들어 있을까? 때가 낀 유리문도닦고 주위도 깨끗하게 청소한 뒤에 기름도 알맞게 채워서 내 마음의 등불도 저렇게 따스한 불 밝히고 싶다. 우리 모두 욕심과 미움과 다툼을 버리고 마음 속에작은 빛 하나씩 밝히고 산다면 그래서 각자의 불빛이 밖으로 피어나와 서로를 비추어 준다면 이 세상이 훨씬 더 밝아지고 따스해 질 것 같다. ----------------------------------------------------- 다와는 무엇이 즐거운지 계속 콧노래를 ..

사진속일상 2003.10.24

달빛이 내 몸을 / 까비르

`마음의 평화`를 노래하는 문맹의 농부 시인 까비르! 인도의 갠지스 강 근처 한 산중 마을에서 어느 수도승과 과부의 사생아로 태어난 까비르는 태어나자마자 길에 버려졌다. 그래서 학교를 다니지 못했고, 평생을 물긷는 일과 베짜는 일로 생계를 이어간 그는 틈틈이 삶의 초월에 대하여, 그리고 마음의 평화에 대한 노래를 불렀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적었다. 글을 읽을 줄 몰랐던 문맹의 시인이며 농부였던 까비르의 시는타고르가 엮어세상에 알려졌다. 달빛이 내 몸을 누리고 있네 그러나 눈먼 내 눈은 그것을 보지 못하네 달이 해가 내 몸 속에 있네 영원의 목소리가 내 몸 속에서 울리고 있네 그러나 내 먼 귀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하네 나 나의 것 그것들을 외치고 있는 동안의 그대의 노력은 무가치하네 나 나의 것에..

시읽는기쁨 2003.10.23

처남의 10주기

꼭 10년 전이었다. 강릉에 살고 있던 처남이 위독하다는 연락이 왔다. 평소 건강하고 활동적인 사람이었기에 설마 하는 심정으로 달려갔다. 처남은 병원 응급실에서 산소 호흡기로 연명하고 있었다. 미동도 하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연구실에있다가 갑자기 숨이 막히며 쓰러졌다는 것이다. 병원에서는 병명도 원인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기를 며칠, 위험하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서울 중앙병원으로 이송하였다. 역시 응급실에 있으면서 종합 검진을 받았다. 의사들도 처음에는 원인을 모르겠다고 했으나 나중에는 급성 폐암으로 진단이 나왔다. 너무나 악화된 상태라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다고 했다. 처음에는 손바닥에 글씨를 쓰며 의사 소통을 하기도 했으나곧 혼수 상태로 빠져 들었다. 가운으로 갈아입고 만났던 짧은 면회 시간, 귀..

길위의단상 2003.10.22

가을엔 편지를 띄우세요

가을비가 내린다. 도시의 아스팔트 길도, 노랗게 물들어가는은행나무 가로수도 비에젖고 있다. 내 마음도 비에 젖는다. 아침부터 분주하던 마음이 가을비에 젖어 차분해진다. 이러다가는 너무 가라앉을까 봐서 걱정이다. 또 우울증이 찾아 오면 어떡하나..... 그러나 적당한 우울과 쓸쓸함은 정신의 보약이 될 수도 있다. 자연과 차단된 여기 사무실 가운데서도 빗소리는 나를 가을의 스산한 늪 속으로 빠지게 한다. [반가운 분이 보내준 갈대 사진 중 하나] 한참동안 소식이 끊어졌던 분에게서 메일이 왔다. `이 아름다운 가을에... 행복하세요.....` 짧은 내용이었으나 따스했다. 그리고 서정 가득한 가을 풍경 사진 여러 장을 같이 보내 주었다. 나도 오늘은 뜸했던 친구들에게 편지를 띄어야겠다. 오해로 소원해진 여러 사..

사진속일상 2003.10.21

하느님은 유죄인가?

어제 저녁 미사는 특별했다. 강론 시간에 바오로딸 수녀님들이 연극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 제목이 `하느님은 유죄인가`였다. 마침 어제가 전교 주일이었다. 바오로딸은 출판이나 미디어를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소명으로 하는 수녀원이다. 가톨릭 신자가 된지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강론이 연극으로 대신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 형식의 파격이 더욱 좋았다. 그런 파격이 주는 긍정적인 인상과 내용은 백 마디 말보다 훨씬 더 직접적인 감동을 주었다. 연극 내용은 다음과 같다. 神이 법정에 기소되었다. 검사와 검사 쪽 증인 두 명이 神을 고발한 것이다. 검사의 기소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현혹시킨 죄. 열심히 일해도 먹고 살까 말까 한 ..

길위의단상 2003.10.20

우리 배추

9월 초에 읍내에 나가 배추 모종을 샀다. 거름 한 포와 섞어서 뜰에다 심어 놓았다. 비가 내리던 그 날, 대충 대충 엉성하게 옮겨 놓기만 했다. 그 뒤 일이 생겨서 내려가 보지도 못한 채 한 달여가 지났다. 물을 주지도 김을 매주지도 못했다. 그런데 산흙을 퍼다 만든 마당의 척박한 땅에서 저 혼자 이만큼 자라 주었다. 농민들이 키운 배추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초라하지만 그래도 이만큼 자라준 배추가 고맙기만 하다. 사이 사이 솎아와서 이웃에도 나누어 주다. 그런데 잎이 억세서 냄비에 푹 끓여 먹어야 겠다.

참살이의꿈 2003.10.19

자작나무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山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모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너머는 평안도땅도 뵈인다는 이 山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白石의 이 시 한 구절 때문에 나는 어느 날 자작나무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때까지 자작나무를 본 적도 없었지만 왠지 자작나무가 다정하게 다가온 것이다. 사진으로 본 새하얀 수피와 가을이면 노랗게 물드는 나뭇잎은 이름 그대로 그렇게 품위있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자작나무의 남방 한계선 아래에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이 나무가 무척 귀한데 북쪽 지방에서는 땔감으로 사용한다니..... 불에 탈 때는 자작 자작하고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자작나무 숲이 망망대해로 펼쳐져 있다..

꽃들의향기 2003.10.18

행복의 조건

나는 지금 행복한가? 글쎄다. 행복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도 아니다. 약간은 어정쩡한 상태이지만 행복한 상태는 아니다. 때에 따라 강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지금의 나는 불안하고 욕구 불만에 차 있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세상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크게 행복할 것 같지도 않다. 나의 바램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더라도 그것은 나의 개인적 성취일 뿐, 가난한 이웃을 외면하고 살 수는 없을 것 같아서이다. 한 끼 끼니를 걱정하는 이웃이 있는데 혼자서호의호식하는 것이 참된 기쁨이고 행복일 수는 없겠기 때문이다. 또어려운 형제를 못 본 척해 놓고 내가 어찌 편안히 잠들 수 있을까? 세상 사람들 살아가는게 다 그렇겠지 뭐 하는 소..

길위의단상 2003.10.18

코스모스 씨를 받다

잠실 쪽 한강 둔치에는 긴 코스모스 길이 있다. 두 달 가까이 아름다운 꽃을 피어 주어서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해 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잎도 시들고, 꽃들도 대부분 지고 그 자리에는 까만 씨가 맺혔다. 퇴근하면서 며칠동안 이 씨를 받았다. 날카로운 끝 부분에 찔리기도 하고, 손가락에서는 코스모스 냄새가 배어 버렸다. 내년 봄에는 내 시골 터에다 코스모스 씨를 뿌릴 계획이다. 집과 마당이 코스모스로 둘러싸여 있는 모양을 그려보면 즐겁다. 욕심이라면 동네 길도 코스모스 길을 만들고 싶다. 온 동네가 코스모스 꽃밭인 시골 마을, 이것 역시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친구들은 씨를 맺고 벌써 땅에 떨어져 내년을 약속하고 있는데, 어떤 친구는 이제야 꽃잎을 활짝 피우고 ..

사진속일상 2003.10.17

그만큼 행복한 날이 / 심호택

그만큼 행복한 날이 심 호택 그만큼 행복한 날이 다시는 없으리. 싸리빗자루 둘러 메고 살금 살금 잠자리 쫒다가 얼굴이 발갛게 익어 들어오던 날. 여기저기 찾아 보아도 먹을 것 없던 날. 아무 것도 먹을 것 없던 그 때가 어떻게 행복했을까? 지나간 것은 다 그리워지기 때문일까? 그 때는 모두들 가난했지만 가난했다는 생각은 거의 없었다. 마음의 배고픔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른이 된 지금, 잘 먹고 잘 살게 되었지만 사람들은 허기에 져 있다. 조사에 따르면 세계의 빈국들에서 행복지수가 높게 나오고 있다. 물질적 풍요와 정신의 행복은 비례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도가 지나친 풍족과 욕심은 공허와 권태라는 또 다른 선물을 가져다 준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또 문명의 발전이라는 것은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가는 과..

시읽는기쁨 2003.10.16

닭의장풀

[닭의장풀, 영주] 닭장 주위에서 잘 자란다고 해서 닭의장풀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만큼 장소 불문하고 잘 자라는 우리 주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다. 그래서 소홀히 하기 쉬운 꽃이기도 하다. 그냥 보면 별 특징없어 지나치기 쉬우나 코를 꽃에 까지 갖다대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척이나 귀여운 꽃이다. 특히 카메라 파인더로 들여다보면그 색깔이나 모양이 무지 이쁘다. 그런데 사진은 보는 만큼 나오지 않는다. 이건 순전히 내 실력 탓이니 어찌 하랴.

꽃들의향기 2003.10.14

마더 데레사 어록

貧者의 어머니,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 오는 19일에 시복된다고 한다. 종교의 경계를 넘어선 그분의 사랑 앞에서는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다. 바오로딸 홈페이지에서 그분의 말씀 몇 가지를 옮겨 보았다. 그런데 그분과 관계된 일화 중에서 감명깊게 들었던 것은 임종하는 사람들의 종교를 최대한 존중해 주며 각자가 원하는대로 종교 의식을 치러 주었다는 것이다. 임종 순간에 힌두신을 부르든, 하나님을 부르든, 알라를 부르든 개인이 믿어왔던 신앙의 절대자에게 평화롭게 안길 수 있도록 보살펴 주었다고 한다. 어쩌면 가장 보수적일 수도 있는 가톨릭의 수녀님이 이런 열린 마음일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아래 글에서도 알 수 있지만 그분은 가장 가톨릭적인 분이시기에 더욱 그러하다. 주변에서 장례 의식 문제로 마찰이..

길위의단상 2003.10.14

塞翁의 지혜

< 북방의 국경 근방에 점을 잘 치는 늙은이(塞翁)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그가 기르는 말이 아무런 까닭도 없이 도망쳐 오랑캐들이 사는곳으로 가버렸다. 마을 사람들이 위로하고 동정하자 늙은이는 "이것이 또 무슨 복이 될는지 알겠소" 하고 조금도 낙심하지 않았다. 몇달 후 뜻밖에도 도망갔던 말이 오랑캐의 좋은 말을 한 필 끌고 돌아오자 마을 사람들이 이것을 축하하였다. 그러자 그 늙은이는 "그것이 또 무슨 화가 될는지 알겠소" 하고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 그런데 집에 좋은 말이 생기자 전부터 말타기를 좋아하던 늙은이의 아들이 그 말을 타고 달리다가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아들이절름발이가 된 데 대하여 위로하자 늙은이는 "그것이 혹시 복이 될는지 누가 알겠소" 하고 태연한 표정이었다..

길위의단상 2003.10.13

국화 전시회

코엑스 앞에서 열리고 있는 국화 전시회장을 찾다. 국화의 종류나 색깔은 상상 외로 다양하고 많았다. 보통은 노란 색의 많은 잎이 중앙으로 뭉쳐진 모양이 연상되는데 그러나 크기나 모양이 각양각색이었다. 그런데 사진에서 보이는 파란 색 국화는 왠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국화에 대한 고정된 선입견 때문일 것이다. 초보자를 위해서 품종 이름과 특성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면 더욱 좋았겠다. 바른 명칭은 아니지만 통상 들국화라고 부르는 우리 야생화는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구절초얼마가 한 쪽 귀퉁이를 장식하고 있었다. 1500여년 전 도연명의 손에 들려 있었을 국화는 어떤 것이었을까? 괜히 쓸데없는 게 궁금해 진다.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따다가 아득히 남산을 바라보네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

사진속일상 2003.10.11

가을 불청객, 우울증

몇 해 전부터던가, 가을만 되면 우울증이 찾아왔다. 이 손님은 도둑 고양이처럼 살금 살금 스며 들어와서는 아차 하고 알아챌 때에는 벌써 나는 포로가 되어 버렸다. 가을의 정점이 되면 내 가슴은 갈갈이 찢어져 찬 바람이 제 멋대로 불어 지나가고 내 마음은 모랫바람 날리는 사막이 된다. 무기력과 절망 - 이런 증상에 한참을 시달려야 한다. 내가 개인주의적 성향이어선지 이 시기가 되면 더욱 자폐적이 되어 버린다. 자신이 만든 고치 속으로 숨어 버린다. 사람들 만나는 것도 싫고, 세상도 싫고 그렇다고 자신을 긍정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작은 성 안에서 웅크리고 있다. 그 성은 따스하지도 않다. 역시 찬 바람 불기는 마찬가지다. 이 때는 안과 밖으로 호되게 시련을 당하는 시기이다. 온 세상의 고통을 혼자 짊어진 듯..

길위의단상 2003.10.11

감나무

감나무 바라보기 김광섭 (.........) 멍청하니 오랫동안 감나무를 바라보면 어떨까 바쁘게 달려가다가 힐끗 한 번 쳐다보고 재빨리 사진 한 장 찍은 다음 앞길 서두르지 말고 그 자리에 서서 또는 앉아서 홀린 듯 하염없이 감나무를 바라보면 어떨까 우리도 잠깐 가을 식구가 되어 작년 늦가을, 친구와 인사동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 시간이 많이 남아서 경복궁에 들어가 이곳 저곳을 둘러 보았다. 북쪽 어느 모퉁이에 감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아마도 관상용으로 감은 따지 않고 그냥 두었는가 보다. 덕분에 까치 두 마리가 포식하고 있었다. 까치밥이 아니라 까치의 잔칫상이었다.

사진속일상 2003.10.10

기도

샌, 조금은 바보처럼 살자! 샌, 조금은 모자라게 살자! 샌, 조금은 욕심을 버리자! 샌, 조금은 마음을 비우자! 가앙 가앙..... 가을 하늘은 자꾸만 높아만 간다. 꾸역 꾸역..... 늘어나는 욕심으로 나는 자꾸 무거워진다. 이 좋은 계절 가운데서 나는무너지고 있다. 상대를 모르는 싸움에 지쳐가고 있다. 하느님! 제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현실을 받아들을 수 있는넉넉함을 주소서. 세상사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는 감히 청하지 않사오나 그러나 당신의 따스한 한 마디가 그립습니다. 그 한 마디면 다 족하겠습니다.

참살이의꿈 2003.10.10

어느 묘비석

산길을 가는데 묘비석 하나가 길에 나뒹굴고 있었다. 까만 돌에 정성들여 음각한 글자가 선명한데 어쩌다 제 자리에 있지 못하고 길에 파묻혀 등산객들 발길에 밟히고 있는지 안타깝기만 했다. 그 비문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여기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위하여 평생을 바쁘게 일 속에서 사시다 가신 아버님께서 잠드시다. 우리들이 짐을 벗겨드리기 전에 먼저 가셨다. 이제 무거웠던 짐을 다 벗어놓으시고 편히 쉬시옵소서. 가을이다.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처럼, 선인들처럼 바쁜 걸음 멈추고 저 흙으로, 고요로 돌아가리라.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사진속일상 2003.10.09

감자를 먹으며 / 이오덕

녹색연합에서 만드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말 그대로 작은 잡지가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 이오덕 선생님의 `감자를 먹으며`라는 시를 만났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얼마 전에 돌아가셨는데, 우리 나라 초등 교육과 우리 말 가꾸기 운동에 일생을 보내신 올곧은 선비셨습니다. 언젠가 TV 프로그램으로도 소개가 되었었지요. 권정생 선생님과의 아름다운 교유를 감명깊게 보았습니다. 좀 길기는 하지만 시 전문을 옮겼습니다. 저같은 중년 세대의 사람들이라면 어릴적 추억에 젖게 할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전 감자를 너무 많이 먹어서 질리기도 했지요. 이 시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감자가루를 삭혀서 만든 쫄깃쫄깃한 감자떡 기억도 납니다. 그리고 시냇가에서 감자 구워 먹는 묘사, 너무나 생생해서 아마도 선생님께서는 어른이 되어서..

시읽는기쁨 2003.10.08

쑥부쟁이

[쑥부쟁이, 고향집 앞] 잔돈푼 싸고 형제들과 의도 상하고 하찮은 일로 동무들과 밤새 시비도 하고 별 것 아닌 일에 불끈 주먹도 쥐고 푸른 달 빛에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하면서 바람도 맞고 눈 비에도 시달리는 사이 저도 모르게 조금씩 망가지고 허물어져 이제 허망하게 작아지고 낮아진 토성 지천으로 핀 쑥부쟁이 꽃도 늦서리에 허옇게 빛이 바랬다 큰 슬픔 큰 아픔 하나도 없이 - 신경림 `토성` 고향집 앞 냇가 둑에는 가을이면 쑥부쟁이가 지천으로 피어 올랐다. 어느 날 아침 이슬을 담은 쑥부쟁이가 아침 햇살에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막 아침 세수를 끝낸 앳된 처녀의 얼굴 같았다. 그러나 이 시에서 처럼 토성(土城)과 쑥부쟁이, 그것도 왠지 잘 어울릴 것만 같다. 삶의 풍파에 닳고 씻겨서 이젠 비어지고 둥글어진 ..

꽃들의향기 2003.10.07

산다는게 뭔지

가을은 떠나가는 계절인가 보다. 일주일 사이에 지인 세 사람의 부음을 들었다. 오늘 새벽에는 친구의 장례 미사에 다녀왔다. 앞 자리에 앉은 검은 상복을 입은 가족들의 처진 어깨가 더욱 슬펐다. 지금까지도 기분이 우울하고 스산하다. 나도 언젠가는 앞자리에 앉아 가까운 이를 떠나 보내는 이별 의식을 치러야 하리라. 그리고 또 언젠가는 나 자신이 이 의식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리라. 나는 언젠가는 죽어야 할 존재이다. 가장 분명한 이 사실을 또 대부분 가장 무시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마치 이 지상에서 영원히 살아갈 듯이 말이다. 늘상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지만 산다는게 뭔지 정말 모르겠다. 이런 걸 보면 뭘 얻었다고 기뻐하고, 뭘 잃었다고 슬퍼할 이유가 전혀 없을 것 같은데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온나는 이내 과거의..

길위의단상 2003.10.07

삼보일배 하면 기독교인 아니다

오늘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기사 전문은 다음과 같다. 제목; 삼보일배 하면 기독교인 아니다 전북 기독교교회협의회(회장 최희섭 목사)는 6일 "기독교 이름으로 삼보일배(三步一拜)를 해서는 결코 안되며 기독교 단체는 삼보일배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전북지역 14개 시.군 기독교회로 구성된 협의회 대표 8명은 이날 오전 전북도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불교 의식인 삼보일배는 기독교 교리와 성서에 위배되는 행위"라면서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기독교인이 아니며 기독교인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언론은 앞으로 기독교가 삼보일배에 참가했다는 보도를 삼가 주기를 바라며 기독교인은 반대의사를 표현할 때 신앙 양심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

길위의단상 2003.10.06

한 달 만에 다녀오다

한 달 만에 내 터에 다녀왔다. 내려갈 때는 마지못해서 억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이 이러할까 싶었다. 그러나 올라올 때는 몇 가지 심각했던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였다. 내려가던 길에 한 집에 들렀다. 이분들은 벌써 10여년 전에 귀농하신 분들이다. 기반을 닦은 모습이부러운데 자신들도 초창기에는 무척 고생 많이 했다고 과거 얘기 들려주며 힘 내라고 하신다. 안스러워 걱정해 주는 마음이 표정에 서려 있다. 동네에서는 두 쪽 갈등 사이에 끼여 처신하는데 무척 괴롭다. 시시비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나에게 요구하는 사항을 어느 쪽도 받아들여주지 못했다. 잘못하면 이쪽 저쪽에서 동시에 욕을 얻어 먹어야 되는 처지다. 묘하게도 일이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잘 되면 부드럽게 ..

참살이의꿈 2003.10.05

개업 선물

밤새 대전 상가에 다녀온 후 새로 개업한 사우나에 들렀다. 개업 선물로 휴대용 화장지를 주는데 업주 지음이라고 적힌 참승리라는 글귀가 눈에 띄었다. 꿈은 금이요, 그 성취는 은이며 또한 실패는 다이아몬드니 좌절뒤 도전은 이 모두를 다 갖는 것이다. 아마 이분도 실패와 좌절을 겪으셨을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위로와 다짐으로 이런 글귀를 적지 않았을까? 업주님, 사업의 번창을 기원합니다.....

사진속일상 2003.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