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오디세이 본문

잘 만들었다고 세평이 자자해서 극장에 찾아가서 봤다. 그러나 지인 중에서는 별로라는 사람도 있어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나 역시 소문처럼 대단하지는 않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지루하지도 않았지만. 영화는 호메로스의 원작에 충실하려고 했으나 그게 오히려 족쇄가 되지 않았나 싶다. 어차피 신화적 요소가 강한데 더 상상력의 날개를 폈다면 좋았으련만.
'오디세이'는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10년 동안의 여정을 다룬다. 외눈박이 거인, 갑옷 거인족, 마녀, 세이렌, 바다 괴물, 포세이돈 신의 도전을 받으며 부하를 모두 잃고 혼자 남겨진 오디세우스는 여신 칼립소의 섬에서 7년 동안 갇혀 지낸다. 오디세우스가 자리를 비운 사이 이타카에서는 그의 왕위를 노리는 무리들이 아내 페넬로페와 괴롭히고 아들을 살해하려 한다. 천신만고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도전자들을 처단하고 자신의 왕국을 되찾는다는 내용이다.
뭉클한 장면이 여럿 있지만 오디세우스가 옛 기억을 회상해 내고 고향을 찾아 칼립소를 떠나는 순간도 그중 하나였다. 오디세우스는 초라한 뗏목에 의지해 망망대해에 자신의 전부를 맡긴다. 오로지 귀향에 대한 일념 때문이다. 이런 결단과 용기가 그를 영웅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의지가 강하니까 칼립소도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격려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것이다. 여기서는 영화 '빠삐용'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왕국을 회복한 오디세우스는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아내와 함께 해가 지는 서쪽 나라로 떠나간다(원작의 결말이 어떠한지는 궁금하다). 해가 지는 서쪽 나라는 망자들의 땅이다. 그곳으로 간다는 의미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죽은 군인들의 넋을 위로하며 살아가겠다는 결심인 것이다. 이 역시 그가 비범한 인물임을 말해준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를 함락시키며 전쟁의 잔인함과 추악함을 목격했다. 그는 부끄러워하고 참회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우두머리가 되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영화에는 '제우스의 법'과 '문명의 붕괴'라는 말이 여러 차례 나온다. 제우스의 법은 손님을 환대하고 상대를 존중하라고 한다. 제우스의 법의 상실과 문명의 붕괴는 같은 의미이다. 놀란 감독은 영화를 통해 지금 우리 시대를 빗대고 싶었던 것 같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이 쌓아 올린 문명의 탑이 어쩌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우리를 무겁게 덮고 있다.
'오디세이'가 주는 메시지를 다시 음미한다. 그리고 왜 오디세우스가 영웅인지를 생각한다. 목마의 꾀로 트로이를 정복해서가 아니었다. 동네 cgv에서 아내와 같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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