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나무 654

삼인리 송악

송악에서는 삶의 처절함과 지난함이 느껴진다. 송악은 바위나 나무를 타고 오르는데 마치 밧줄 같은 줄기가 다른 물체를 감고 올라가는 모습은 처절한 생존경쟁의 현장 그대로이다. 특히 송악이 다른 나무를 감고 있을 때 그것은 서로간에 죽이느냐 죽느냐의 절박한 상황을 연출한다. 이때 송악은 짖궂은 심술꾸러기 같다.그리고 바위를 타고 오르는 송악 줄기는 바위 색깔 그대로를 닮았다. 그래서 나무가 아니라 바위의 한 부분으로 보인다. 송악은너무나 바위를 사모해서 아주 바위에 딱 달라붙었다. 그러나 너무 가까이 있는 것도 내 눈에는 무척 힘들어 보인다. 송악은 엄청난 욕심꾸러기다. 선운사 입구에 있는 이 삼인리 송악은 우리나라에 있는 송악 중에서 가장 크다. 줄기 둘레가 80cm에 이르고, 높이는 15m나 된다. 여기..

천년의나무 2007.06.05

동검도 서어나무

오래된 서어나무가 있다고 해서 일부러 동검도에 들렀다. 섬의 서쪽 해변가 마을에 부채살 모양으로 가지를 펼친 싱싱한 서어나무가 있었다.안내판에는 수령이 200년, 크기는 높이가 20m, 둘레가 3.2m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수종은 이상하게 소사나무로 적혀 있다. 서어나무와 소사나무가 비슷하긴 하지만 수목도감에 보면 서어나무와 소사나무는 엄연히 다른 나무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지 안내판이 도리어 헷갈리게 만든다. 서어나무 하면 근육질의 줄기가 우선 연상된다. 울퉁불퉁해서 재목이나 다른 용도로는 별로 쓰이지 못한다. 건조도 어렵고, 목재가 잘 썩는다고 한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별 쓸모 없는 나무다. 그러나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해변가의 방풍림으로 심기도 한다. 우연인지 내가 본 서어나무는 모두 바닷가..

천년의나무 2007.05.21

백련사 동백림

백련사 옆에 있는 이 동백림은 약 4천평의 넓이에 15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빽빽이 자라고 있다고 한다. 나무의 수령은 잘 알 수 없으나 키는 보통 5 - 6 m에 이른다. 수치상으로는 굉장히 넓은 면적이고 숫자도 많으나 숲속에 들어가면 숲 전체의 모습을가늠하긴 어렵다. 이번 여행에서는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넘어가는 길을 따라서 동백림의 일부만 들여다 보았다. 동백이 진지는 한참이 되었으나 아직도 땅에는 시든 동백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이놈들은 아마 아주 늦게 핀 동백일 것이다. 한 달 전 쯤만 왔어도 낙화한 동백의 처절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사실 동백은 나무에 핀 모습보다는 땅에 떨어진 풍경이 훨씬 더 눈길을 끈다. 붉은 꽃송이째 툭툭 떨어져 땅을 뒤덮은 풍..

천년의나무 2007.05.10

백련사 배롱나무

백련사에 들어섰을 때 다른 무엇보다 배롱나무에 눈을 빼앗겼다. 만경루 앞마당에 우뚝 서 있는 이 배롱나무는 여성적이고 부드러운 자태로 만경루의 투박하고 위압적인 모습을 잘 중화시켜주고 있었다. 수령이 약 400년이나 된다고 하니 내가 본 배롱나무 중에서도 아주 큰 편에 속했다. 붉은 꽃이 만개할 여름에 찾아왔다면 아마 더욱 장관이었을 것이다. 나도 이 배롱나무를 키워본 적이 있었다. 봄에 심은 나무가 늦게까지 잎을 내지않아 죽은 줄 알았는데 여름 가까이 되어서야 살아있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그리고 추위에 약하다는 말을 듣고 겨울이면 줄기를 감싸주며 정성을 들였건만 약간 소홀히 했던 한쪽 줄기는 죽어 버렸다. 반신불수가 된 나무를 보며 공원에서 보는 원형의 아름다운 수형을 가진 배롱나무는 얼마나 많은 정성..

천년의나무 2007.05.07

용궁사 느티나무

영종도에 있는 용궁사에는 오래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다. 각각 할아버지와 할머니나무로 이름 붙은 이 느티나무들은 수령이 1300 년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목이다. 이 정도 나이면 우리나라 느티나무 중 최고령에 해당된다. 두 나무 중 할아버지나무는 그런대로 생육 상태가 좋은 편이고, 할머니나무는 한 쪽 줄기가 완전히 죽어버렸다. 그래도 남은 줄기에서는 봄의 새잎이 파랗고 무성하게 돋아나고 있다. 나무 아래 길에서 윗방향으로 바라본 모양이 마침 역광이어서 힘있는 사진으로 찍을 수있었다. 용궁사(龍宮寺)는 신라 문무왕 10년(670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백운사(白雲寺)'로했다고 한다. 이 절 뒷산 이름이 백운산이다. 그러니까 느티나무는 절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는셈이다. 절 옆으로는 산으로 오르는 길이 나..

천년의나무 2007.05.04

월드컵공원 메타세콰이어

메타세콰이어(Metasequoia)는 화석으로서만 그 존재가 밝혀졌다가, 1940년대에 중국 양자강 부근에서 실제 나무가 발견되어 지금은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는 특이한 나무이다. 이 나무는 공룡시대 때부터 생존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니 은행나무와 더불어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나무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용도가 주로 가로수로 심고 있는데, 담양의 메타세콰이어 길은 유명하다. 북아메리카에는 세콰이어라는 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다. 오래된 세콰이어는 높이가 100여 m에 이르러 세계에서 큰 나무들은 대개 세콰이어가 차지하고 있다. 삼나무과의 이 나무들은 크고 오래 살기가 다른 나무들에 비해 월등한 모양이다. 거목으로 자란 세콰이어는 자연에 대한 외경감을 느끼게 할 정도로 웅장하다. 메타세..

천년의나무 2007.04.27

경회루 버드나무

경복궁 경회루 연못 둘레에는 버드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다. 역시 물과 버드나무는 잘 어울려서 물가를 따라 능수버들이 하늘거리는 풍경은 고궁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이곳은 경복궁에서도 경치가 좋은 곳이다. 그런데 버드나무들 가운데 특별히 눈에 띄는 버드나무가한 그루있다. 얼마나 모진 풍파를 겪었는지 이 나무는 옆으로 누워서 줄기가 비비 꼬여있고, 줄기 가운데로는 구멍까지 나 있어 너무나 안타깝다. 마치 누군가가 분재를 만들 듯 일부러 그렇게 장난을 친 것 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나무 끝에서는 지금 여느 버드나무와 마찬가지로 초록잎이 싱싱하게 돋아나고 있다. 안스러운 마음 가운데서도 그 불굴의 생명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이 나무 둘레에 철책을 치고 보호하고 있다. 나무 구실을 못하는 쓸모없는 ..

천년의나무 2007.04.25

하동 송림

섬진강을 찾아간 길에 하동 송림에 들렀다. 이곳 소나무숲은 조선 영조 21년(1745년)에 당시의 도호부사(都護府使)였던 전천상(田天祥) 공이 섬진강변의 바람과 모래를 막기 위해 소나무를 심은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약 8천평의 면적에 1000 그루 정도의 소나무가 강변을 따라 숲을 이루고 있다. 오래된 소나무는 수령이 300년 가까이 되는 셈이다. 이곳 송림은 섬진강의 넓은 모래사장과 조화를 이루어 말 그대로 백사청송(白沙靑松)의 절경이다. 바닷가에서는 방품림을 흔히 볼 수 있지만 강변의 이런 대규모의 멋진 방품림은 처음이다. 특히 주차장 가까이에 서 있는 한 그루 소나무의 S자로 휘어진 자태는 매혹적이었다. 송림은전체적으로 철책이 둘러처져 있다. 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다지만 모양새가 영 볼..

천년의나무 2007.03.07

죽녹원 대나무숲

죽녹원은 대나무의 고장인 담양군에서 조성한 대나무 숲이다. 밖에서 보이는 모습은 작은 동산 정도지만 안에 들어서면 빽빽한 대나무숲이 우리 같은 북쪽 지방 사람들에게는 이국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이렇게 풍성한 대나무 잔치는 처음이었다. 여기서 자라는 대나무는 왕대다. 왕대(Giant Timber Bamboo)는 참대, 늦죽, 고죽(古竹), 진죽(眞竹)으로 불린다는데 중국이 원산이고줄기는 청록색을 띠며 줄기와 가지는 거의 직각을 이룬다고 한다. 대나무의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곧게 뻗은 줄기와 그 줄기가 활처럼 휘어지며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다. 특히 대나무 잎이 서로 몸을 부비며 사각이는 소리는 자연의 소리 중에서도 일품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 대나무숲의 단점이라면 너무나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는 것..

천년의나무 2007.03.04

담양 메타세콰이어 길

어린 시절을 추억할 때 기억에 남아있는 것들 중 하나가 마을 앞을 지나는 신작로의 포플러 가로수 길이다. 10km 가까이 두 줄로 늘어선 포플러나무들, 그 미끈하게 뻗은 몸매와 가지에 무성하게 매달려있던 삼각형의 초록 이파리들이 바람에 팔랑거리는 모습은 지금도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떠오른다. 도로가 확장되면서 지금은 그 나무들이 다 없어졌지만 어디선가 그런 가로수 길을 만나면 내 유년이 기억이 살아나 지그시 눈을 감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가로수 길이 바로 담양의 메타세콰이어 길일 것이다. 몇 년 전엔가는 아름다운 가로수 길로 대상을 받은 적도 있었다. 메타세콰이어(Metasequoia)는 원래 중국이 원산이나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개량이 되었고 우리나라에 심어진 것도 대부분이 이 종류라고 한..

천년의나무 2007.03.03

의림지 제방숲

오래 전에 아이들을 인솔하고 제천 의림지에 들린 적이 있었다. 20년도 더 된 훨씬 전의 일이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던 차에 이번에 제천을 지나게 될 때 짬을 내어 의림지를 찾아보았다. 의림지(義林池)는 김제의 벽골제와 함께 원삼국시대에 축조된 저수지로 알려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의 우륵이 쌓았다고 하는데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호수가 유명하다는 것은 충청도를 가리키는 호서(湖西)라는 말이 이 호수의 서쪽지방이라는 의미이고, 제천의 옛 이름인 내제[큰 제방]이라는 의미도 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의림지는 세종 때에 정인지에 의해 두 차례 수축되었고, 1972년 장마에 둑이 무너져 이듬 해에 복구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호수 둘레는 약 1.8km에 이른다. 제방 둑에는 영호정 등..

천년의나무 2007.02.16

광천리 관음송

이 나무는 영월군 남면 광천리에 있어 보통 광천리 관음송이라 불리는데 영월 청령포를 찾아가면솔숲 가운데에 있는 이 나무를 만날 수 있다. 청령포는 단종이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다. 관음송(觀音松)이라는 이름도 이 나무가 당시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觀], 들어서[音] 붙여졌다고 한다. 그래서 이 나무의 수명도 대략 600여 년으로 추정한다. 17 세의 어린 단종이 이 나무의 갈라진 가지 사이에 앉아서 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청령포 솔숲에 있는 소나무들 중에서도 이 관음송은 군계일학으로 뛰어나다. 땅에서 올라온 줄기가 아이들 키 높이 정도되는 곳에서 둘로 갈라졌는데 두 줄기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기상이 대단하다. 그 높이가 30 m에 이른다니 왠만한 고층 아파트 높이에 해당된다. 노산군(魯..

천년의나무 2007.02.12

청령포 소나무 숲

한국인을 말할 때 '소나무에서 나고 소나무에서 살다 소나무에서 죽는다'고 한다. 그만큼 소나무는 한국인과 가깝다. 모든 한국 사람은 소나무로 만든 집에서 태어나 푸른 생솔가지를 꽂은 금줄을 치고 지상에서의 첫날을 맞는다. 자라면 소나무 우거진 솔숲이 놀이터가 된다. 봄이면 물오른 솔가지를 꺾어 송기를 갉아먹으며 허기를 달래고 솔 연기를 맡으며 살다 소나무관 속에 육신을 묻는다. 그리고 무덤가엔 둥그렇게 솔을 심어 저승의 집을 꾸민다. 한국의 솔은 흔히 부르는 이름인 '소나무'와 '곰솔' 두 종류로 나눈다. 그리고 소나무의 대표적 수종으로는 육송, 적송, 반송, 금강송 등이 있고, 곰솔은 보통 해송(海松)이라 불리며 바닷가를 따라 자라고 있다. 전세계의 소나무는 100 종 가까이 된다는데 우리나라 만큼소나..

천년의나무 2007.02.09

오죽헌 오죽

대는 일찍부터 질기고 매끄러운 특성 때문에 생활용품으로 널리 사용되어 왔다. 그리고 잘 부러지지 않는 곧은 성격 때문에 정절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매화, 난초, 국화와 함께 사군자라 불리었다. 그 중에서도 오죽은 다른 대보다 색채가 아름답고 윤기가 있으며 질겨 더욱 사랑을 받았다. 줄기의 빛깔이 검은색이어서 오죽(烏竹)이라고 불리며 신성한 곳에서만 뿌리를 내린다고 하여 예부터 소중하게 취급 받았고, 담뱃대와 부채, 가구를 만드는데 쓰였다. 죽순은 5-6월에 나오는데 첫해는 초록색이지만 다음해부터 검어진다. 강릉 오죽헌(烏竹軒)이 바로 이 오죽으로 유명하다. 오죽헌은 원래 율곡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의 집이다. 원래 신사임당 외조부의 집이었는데, 외조부가 아들이 없어 무남독녀인 신사임당의 어머니에게 집을 상속했..

천년의나무 2007.02.08

관청리 은행나무

이 은행나무는 강화도 관청리 고려궁지 옆에 있다. 고려궁지는 고려가 대몽항쟁을 위해 1232년에 수도를 개성에서 이곳으로 옮겼을 때 건설되었다. 그 뒤 1270년에 몽고와 화의가 성립되어 개성으로 환도한 뒤 이 터에는 조선시대에 행궁이나 강화유수부 건물들이 들어섰다고 한다. 그러니까 여기는 조선시대 주요 관청들이 있었던 곳이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관청리인 것 같다. 추측컨대 이 은행나무도 어느 관청 건물 마당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가까이는 프랑스에 의해서 기타 여러 차례 병화를 겪으며 관청이 있던 곳은 불에 타고 축소되어 지금은 마을이 들어선 것 같다. 고려궁지 앞 쪽에서는 그런 옛 터의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 이 은행나무는 경기도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안내문에 의하면 나무의 나이는 약 70..

천년의나무 2007.01.28

용문사 은행나무

용문산 은행나무는 1100살로 우리나라 뿐 아니라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라고 한다. 높이가 40m나 되는 키다리 은행나무인데 천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지금도 당당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이 나무에도 역시 유명인이 등장하는 전설이 만들어져 있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세자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가던 길에 심은 것이라는 전설이 있다. 935년 경순왕은 군신회의를 소집해 고려에 항복하기로 결정한다. 이에 마의태자는 천년사직을 하루 아침에 버리는 것에 반대했으나 결국 신라가 고려에 병합되자 금강산에 들어가 베옷[麻衣]을 입고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먹으며 여생을 마쳤다. 다른 하나는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義相大士)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뿌리를 내려 이 은행나..

천년의나무 2007.01.24

마량리 동백나무 숲

서천군 서면 마량리의 서해화력발전소를 돌아가면 이 동백나무 숲을 만난다. 서해 바다와면한해식절벽 위에 동백정이라는 정자가 서있고, 육지 쪽으로 비스듬한 경사면을 따라 수령이 300년 정도 된 85주의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다. 나이에 비해 동백나무의 키는 그렇게 높지 않은 편이다. 아마도 여기가 동백나무의 북방한계선 쯤 되고 바다의 해풍을 바로 맞아야 되는 지리적 영향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언덕에 있는 마량당집에 적힌 안내문에 보면 여기에 동백숲이 조성된 경위가 나와 있다. 옛날 이 마을 사람들은 뗏목을 타고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를 하였는데 바다에 휩쓸려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남편과 자식을 잃은 한 노파가 앞바다에서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용왕을 잘 위해야 화를 면하리라 생각하..

천년의나무 2007.01.04

방학동 은행나무

세상 사는 일이 허전하고 쓸쓸할 때면 큰 나무를 만나고 싶어진다. 어느 늦가을 날 지하철을 타고 창동역에서 내려 마을버스(1161번이던가?)로 갈아타고 방학동으로 은행나무를 찾아간다. 이 은행나무는 수령이 800여 년으로 서울시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라고 한다. 전날 비바람이 세차게 친 탓인지 은행잎은 거의 다 떨어지고 나무는 맨몸으로 차갑게 서 있다. 잎을 다 떨구고 드러난 거목의 나신이 왠지 마주보기가 부끄럽다. 잎을 달고 있을 때에는 보이지 않던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줄기와 가지에 드러나 있어 더욱 그렇다. 마치 주름지고 탄력 잃은 할머니의 속살을 보는 것처럼 안타깝기도 하다. 예전에는 산 속에 있었겠지만 지금은 도시가 팽창하여 인간의 집들이 이 나무를 포위해 버렸다. 오직 한 면만 산자락에 접..

천년의나무 2006.11.20

십리포 서어나무

영흥도에 있는 십리포 해수욕장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서어나무(소사나무) 군락지가 있다. 약 150여 년 전에 마을 사람들이 해풍을 막기 위해 심은 방풍림으로, 해안가를 따라 천 평 가량의 터에 300여 그루의 서어나무가 자라고 있다. 지금은 보호 울타리를 쳐서 들어가지는 못하고 밖에서만 구경할 수 있다. 나무의 보호를 위해서는 잘 된 일이지만 탐스런 줄기를 만져볼 수 없음은 안타깝다. 이곳의 서어나무는 곧게 뻗지 못하고 구불구불 줄기가 휘어져 있다. 사나운 해풍에 시달린 탓이리라. 년수에 비해서는 크게 자라지도 못했다. 나무에게는 인고의 흔적이겠지만 보는 사람에게는그것이 시각적 아름다움을 선사해 준다. 찾아간 날은 이미 잎도 많이 떨어졌는데 구불구불한 줄기와 가지들이 가을의 쓸쓸한 바다 분위기와 잘 어울렸..

천년의나무 2006.11.08

갤러리''다'' 느티나무

갤러리 '다'에 갔다가 전시보다는 뜰에 있는 느티나무를 더 오래 바라보았다. 마침 갤러리 주인이 옆에 있어서 이 느티나무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땅을 구입하려고 왔을 때 집은 폐가 비슷했고 마당에 있던 느티나무도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고 한다. 나무 주위는 동네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로 가득했다고 하는데 그래도 이 느티나무 하나를 보고 터를 구입했다고 한다. 집을 리모델링 해서 전시장으로 꾸미고, 그리고 마당의 느티나무도 적지 않은 돈을 주고 전문가에게 맡겨 살려냈다는 것이다. 수령이 약 400년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인데 나무 줄기 중 반 이상이 죽어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싱싱한 잎을 달고 이 전시장의 명물이 되고 있다. 비록 나뭇가지가 대부분 잘려진 안스러운 모습이지만 그래도 이 느티나무 때문에 전..

천년의나무 2006.09.15

화양동 느티나무

내가 살고 있는 광진구에는 서울시 기념물 2호로 지정된 나무가 있다. 화양동 110번지에 있는 이 느티나무다. 원래 이 자리에는 조선시대 세종 14년(1432)에 세워진 화양정(華陽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있다. 나무 옆에는 그 위치를 알리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화양정 아래로는 말을 키우던 목장이 있어서 이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말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세종 임금은 이곳에 별장을 짓고 휴식을 취하곤 했다고 안내문에 적혀 있다. 또한 세조에게 쫓겨난 단종 임금이 영월로 귀양 갈 때 하루 밤을 울며 지새웠다는 애사가 서린 곳이 화양정이기도 하다. 조선왕조실록에서 화양정을 검색해 봤더니 세종 때 기록은 나오질 않고 총 14 건이 검색 된다. ‘신빈(愼嬪)이 온양으로부터 돌아오니, 세..

천년의나무 2006.08.28

성읍리 느티나무

지난 달에 제주도 성읍민속마을을 찾아들어가니 집집마다에서 사람들이 나와 안내를 자청했다. 알고 보니 이렇게 개별적으로 안내를 하고 나중에 특산품을 사 가라고 권유한다고들 한다. 나에게는 이런 시스템이 왠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자유롭고 둘러보고 싶어도 주민들 시선이 부담이 돼 망설이게 된다. 마치 현대식 쇼핑 매장에서 점원들의 호객 행위와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민속적인 면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그냥 느티나무에 대해물으니 실망하는 눈치로 위치를 알으켜 준다. 성읍마을은 조선시대 약 500 년간 지금 식으로 하면 군청 소재지에 해당되는 지역이었다. 그 전 고려 시대 때부터 이곳에 나무가 울창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는데, 수령 1천 년으로 추정되는 이 느티나무의 역사도 그 때까지 올라가는 것 같다. 길..

천년의나무 2006.03.13

내소사 전나무 길

꽃에 따라 받는 느낌이 다르듯, 숲에도 그만의 향기와 색깔이 있다. 그래서 숲에 들 때 받는 느낌도 여러 가지이다. 같은 숲이더라도 때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한다. 내소사 전나무 길은 수령이 100여 년 된 전나무 숲 사이로 사람의 마을과 절을 연결해 주고 있다. 나무들은 하나같이 의연하고 당당하다. 이 길은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길이다. 속세를 등지고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는 상징성 때문일까, 세속에 물든 탐진치 삼욕이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따라 모두 씻겨나가는 느낌이 든다. 설법을 꼭 법당에서만 듣는 것이 아니다. 이 숲에 들면 사람의 음성이 아니더라도 나무가 해주는 설법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져 오는 것 같다. 일상에 지치고 마음 상한 사람이라면 자연이 주는 위로의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천년의나무 2006.03.08

궁리 소나무

서해안고속도로 홍성IC에서 서산방조제 방향으로 가다보면 방조제를 거의 다 간 길 옆에서 이 소나무를 볼 수 있다. 지명으로는 홍성군 서부면 궁리이다. 나무가 크고 모양이 특이해 차로 지나가다 보면 누구라도 이 나무에 시선을 뺏기게 된다. 여유가 된다면 차를 세우고 내려서 나무 둘레를 한 바퀴 돌아보며 구경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안내문에 보면 예전에 방조제가 세워지기 전에는 바닷물이 여기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여름이면 마을 사람들이 이 나무 아래서 쉬고 음식물을 먹으며 해수욕을 즐겼고, 음력 정월이면 마을의 안녕과 풍랑을 막아달라고 기원하는 풍어제를 올리던 당상목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마을 앞 바다가 너른 들판으로 변했다. 이 소나무도 4차선 넓은 도로에 의해 마을과 차단되고, 파도소리..

천년의나무 2006.03.02

서광다원 차나무

중국에서 시작된 차(茶)문화는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7세기 주나라 때에 이미 차를 마셨고, 기원전 2세기에는 차나무의 재배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선덕여왕 때에 당나라에서 들여와 즐겨 마셨다고 하니, 차나무는 우리 민족과 오랜 세월 동안 인연을 맺으며 함께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차나무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고려 시대 때 궁중에 차를 공급하는 관청을 ‘다방(茶房)’이라고 했다는데, 우리나라에서 차는 승려나 왕족 등과 같은 상류 계급의 전유물이었다. 특히 조선 시대에 들어서는 불교가 쇠퇴하며 더욱 위축되었는데 차를 마시는 습관이 서민층으로 확대되지 못한 것이 우리나라의 차문화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발달되지 못한 이..

천년의나무 2006.02.22

새천년비자나무

북제주군 구좌읍에있는 비자림을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그동안 몇 번의 제주도 패키지 여행에서는 한 번도 소개받지 못한 곳이었다. 이제야 알게 된 것이 아쉬울 정도로 비자림은 놀라움과 신비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예전에 여기 왔더라도 나무에 관심이 없었을 때니 그저 심드렁했을지도 모른다. 비자나무 하면 최고급 바둑판으로 사용되는 정도로알고 있던 게 전부였다. 물론 이제껏 비자나무를 직접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비자나무 숲 속에서 최고의 호사를 누린 것이다. 이 숲 속에 들면어떤 신비스러움과 경외감에 사로잡히게된다. 숲에서 나오는 알지 못하는 기운이 자신을 감싸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걸음은 느려지고 입은 다물어지며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이 지역 마을 사람들 또한 비자림을 ..

천년의나무 2006.02.17

손기정공원 월계관수

서울 만리동 손기정기념공원 안에 있는 이 나무는 '월계관수(月桂冠樹)'로 불리고 있다. 1936년 제 11회 베를린올림픽의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가 썼던 월계관과 같은 나무를 가져다 심은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그리스에서는 지중해 부근 건조지대에서 자라는 월계수의 잎이 달린 가지로 월계관을 만들었다는데, 독일 베를린에서는 월계수 대신 북미가 원산인 참나무 가지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나무의 종류는 월계수가 아니라 북미산 참나무이다. 찾아간때가 겨울이어서 잎은 다 떨어지고 미끈한 줄기가 드러난 이 나무를 볼 수 있었다. 당시에 손기정 선수는이 나무의 묘목을 부상으로 받았다. 시상식 장면을 찍은 사진을 보면 부상으로 받은 나무 한 그루를 가슴에 안고 있다. 손 선수는 이 나무로 일장기를 가렸다..

천년의나무 2006.02.06

감천면 석송령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를 뽑는다면 아마 이 석송령도 강력한 후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라도 이 나무의 단아한 자태를 보면 첫 눈에 반하게 될 것이다. 아주 곱게 나이 들어가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연상된다. 수령이 600 년 가까이되지만 남성적인 기상 보다는 여성적인 아담함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그리고 외모만이 아니라 정신적 아름다움과 깊이까지 느껴지는 기품이 있다. 현장에 세워져 있는 안내문에 보면, 이 나무는 약 600여년 전 풍기 지방에 큰 홍수가 졌을 때 석관천을 따라 떠내려 오던 것을 지나가던 과객이 건져 이 자리에 심었다고 한다. 그 후 1930년 경에는 당시 이 마을에 살던 이수목이란 사람이 영험있는 나무라는 뜻으로 석송령(石松靈)이라는 이름을 짓고, 자기 소유의 토지..

천년의나무 2006.01.12

금산 송악

지난 겨울 남해도의 금산에 올랐을 때 이 송악을 만났다. 보리암 부근의 장군봉이라는 바위였는데, 송악임을 가리키는 안내 간판이 없었더라면 아마 그냥 지나쳐 버렸을 것이다. 송악은 이름만 들어보면 소나무 종류인 것 같지만 실제는 두릅나무과의 늘푸른 덩굴나무이다. 줄기에는 부착근(附着根)이 있어서 돌이나 다른 나무에 붙어서 타고 올라가며 자란다. 남쪽 지방에서는 돌담장에 이 나무를 심는다는데, 그래서 별명이 담장나무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오래 되면 담장을 감싸서 강풍에 담장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영어 이름은 Ivy인데 잎이 꼭 집에서 관상용으로 기르는 아이비 잎처럼 생겼다. 이 금산의 송악은 얼마나 오랜 세월 바위와 동고동락하며 살았던지 나무 줄기의 색깔이 바위와 구별하기가 힘들다. 오래 함께..

천년의나무 2006.01.04

경복궁 은행나무

경복궁 서쪽 사람이 별로 찾지 않는 한적한 곳에 시골 마을의 정자나무 역할을 하는 이 은행나무가 있다. 별로 크지도 않고 눈에 띄는 특징도 없으나 아담한 것이 도리어 더 친근감이 드는 나무이다. 특히 나무 밑에는 줄기를 중심으로 둥글게 벤치가 마련돼 있어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에는 아주 좋다. 나도 자주 이 앞을 지나가면서한가할 때는 가끔씩 나무 아래에 앉았다 가곤 한다. 지금 뒤쪽은 경복궁 복원 공사로 어수선하지만 아직은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지 않어선지 조용한 편이다. 가을이 되면서 이 나무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어머니들의 모습이 자주 보이고, 노란 은행잎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에 발길이 멈추게 된다. 그리고는 나무와 사람들의 어울림을 흐뭇한 마음으로 바..

천년의나무 2005.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