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나무 668

연주암 고사목

생명을 받은 모든 존재는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 그리고 인간에게 있어 죽음은 무섭고 두렵다. 그것은 죽음의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고통과 상실감, 공포 의식 등이 원인일 것이다. 다른 생명들도 인간만큼 죽음을 삶의 대척점으로서 의식하는지는 의문이다. 인간의 죽음은 추하지만, 나무의 죽음은 아름답고 숭고하다. 죽은 인간 몸에서는 고약한 악취가 나지만, 썩어가는 나무에서는 숲의 향기가 난다. 그리고 나무를 보면 죽는다는 것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자연에 되돌려주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에서 받은 것을 온전히 반납하는 것이다. 죽은 나무는 다른 생물들의 삶의 터전이 되며 영양분의 공급원이다. 자신의 죽음으로 다른 생명들을 살린다. 나무는 죽어서 다른 생물들의 삶으로 거듭나는것이다. 오랜만에 연주암..

천년의나무 2007.09.18

개평리 소나무

함양에 있는 개평리는 일두 정여창 선생의 고택을 비롯해 옛집들이 많이 남아있어 고풍스런 분위기를 풍기는 마을이다. 마을을 한 바퀴 돌다가 언덕 위에 있는 이 소나무를 발견했다. 소나무는두 그루가 있는데 하나는 마을쪽으로 굽어 있고, 다른 것은 마을 반대쪽으로 굽어 있다. 둘 다 꼬부랑 할머니처럼 줄기가 거의 90도 각도로 꺾여 있다. 마을쪽으로 굽은 나무는 쇠줄에 지탱되어 있는데 그렇지 않다면 넘어져 버릴 정도로 무게 중심이 심하게 아래쪽으로 쏠려 있다. 그런데 두 번째 나무는 죽어버린 듯 줄기와 가지만 앙상하다. 원인은 잘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무척 아쉽게 느껴졌다. 안내문에는 이 나무가 처진소나무에 속하며 높이 16m, 둘레3m, 가지의 폭은 21m에 이른다고 되어 있다. 크기로 봐서는 두 번째 나무 ..

천년의나무 2007.09.08

화서면 반송

우리나라의 명품 소나무 반열에 이 화서면 반송도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떤 분은 이 나무를 나라의 보배라고 불렀다. 그만큼 자태가 빼어난 명목이다. 내가 처음 만났을 때도 마치 보물을 발견한 듯한 눈이 확 떠지는 경험을 했다. 이 나무는 상현리 마을을 내려다보는 산 언저리에 자리잡고 있다. 키는 16.5m, 줄기 둘레는 4.7m에 이르는데, 네 개의 줄기가 멋진 가지를 뻗어 아름다운 나무 형태를 만들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탑 모양으로 생겼다고 예부터 탑송(塔松)으로 불렀다고 한다. 수령은 약 500년으로 추정한다. 나무의 아름다움은 기하학적인 균형미에 있다. 이 나무 역시 우산 모양으로 경사진 각도나 전체적인 균형미가 일품이다. 훌륭한 도공이 빚어낸멋진 도자기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나무 둘..

천년의나무 2007.09.05

반야사 배롱나무

반야사(般若寺)는 영동군 황간에 있는 천년고찰이다. 신라 성덕왕 19년(720)에 의상의 제자인 상원 스님이 창건했다고 한다. 절 앞에는 개천이 흐르고 작지만 저수지도 있어 물이 풍부하다. 이곳 지형이 물 위에 뜬 연꽃 모양이라는데 문외한의 눈에는 잘 확인되지 않는다. 반야사에는오래된 한 쌍의 배롱나무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조선조의 건국 당시 무학대사가 주장자를 꽂아둔 것이 둘로 쪼개져서 쌍배롱나무로 되었다고 하는데, 많은 지팡이 전설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전설에근거했는지는 모르지만 이 나무의 수령을 500년으로 추정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무 크기는 예상보다 작아 그 나이의 신빙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다만 줄기의 생김새가 만만찮은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해 준다. 꽃도 많이 져서 배롱나..

천년의나무 2007.09.03

금대암 전나무

금대암(金臺庵)으로 오르는 길은 멀다. 국도에서 벗어나 가파른 1단의 산길을 3km 정도는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금대암에 서면 천왕봉을 비롯한 지리산 연봉이 눈앞에 펼쳐진다. 금대암은 지리산을 조망하는 최적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금대암 앞에 이 전나무가 우뚝 서 있다. 키가 40m, 줄기 둘레가 3m에 이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전나무라고 한다. 추정 수령은 약 6백년이다. 전나무 자체가 그렇지만 곧게 뻗은씩씩한 기상이 배경의 지리산과 아주 잘 어울린다. 암자 아래 대숲길을 조금만 내려가면 이 전나무에 닿을 수 있다. 밑에서 위를 바라보면 우람한 기상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그러나 산 아래쪽 방향의 가지들은 많이 잘려나가 있다. 또 줄기 아래쪽에도 타원형의 큰 흉텨가 생겨 있다. 나무..

천년의나무 2007.08.31

목현리 구송

나무를 찾아가는 여행에서 네비게이션의 도움을 크게 받고 있다. 복잡한 도시보다도 시골길의 목표물을 찾아가기가 어떤 면에서는 더 어렵다. 네비가 없었더라면 지도와 맞추며 더 힘들게애써야 했을것이다. 목현리 구송은 휴천면사무소를 목적지로 정해 놓으니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들판 가운데에 홀로 서 있는 이 나무는 멀리에서도 쉽게 눈에 뜨였다. 반송인데 구송(九松)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줄기가 아홉 개로 갈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일곱 개밖에 남아있지 않다. 안내문에 보면 이 나무는 약 3백년 전,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진양 정씨의 학산공이심었다고 한다. 반송이 원래 멋들어진 나무지만 이 나무는 특히나 그 자태가 아름답고 매혹적이었다. 내 눈에는 마치 두 발을 모으고 서 있는 발레리나처럼 눈이 부시게..

천년의나무 2007.08.30

학사루 느티나무

학사루 느티나무는 함양초등학교 구내에 있다. 원래는 학사루(學士屢)가 있었으나 1979년에 함양군청 앞으로 옮겨져서 지금은 나무만 남아 있다. 이름은 옛 그대로 학사루 느티나무로 부른다. 안내문 설명에 따르면 이 느티나무는 조선시대 영남학파의 종조인김종직 선생이 함양군수로 있을 때(1471-1475) 객사인 학사루 앞에 심었다고 한다. 따라서 수령은 약 600년가까이 된 것으로 보인다. 나무 높이는 21m, 가슴높이 둘레는 8.3m이며, 천연기념물 40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느티나무는 균형 잡히고 단아한 모습이 우리나라 느티나무 중 최고가 아닐까 싶다. 처음 본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올만큼 조형미가 빼어났다. 마치 옛 양반가의 귀티나는 안방마님 같은 인상이다. 긴 세월의 풍파도 이 나무를 비켜간 것 ..

천년의나무 2007.08.29

상림 사랑나무

서로 다른 두 나무의 가지나 몸통이 합쳐져 하나가 된 것을 연리지(連理枝) 또는 연리목(連理木)이라고 한다. 예전부터 이런 나무는 무척 귀하고 상서롭게 여겼던 것 같다. 특히 연리목은 그 모양 때문에 부부간의 금슬이나 남녀간의 애정을 상징한다. 두 몸이 하나가 되는 형상에서 당연히 그런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상림에 갔을 때 연리목 두 그루를 보았다. 그 중의 하나가 '사랑나무'라고 이름이 붙은 이 나무다. 특히 이 연리목은 수종이 다른 느티나무와 개서어나무의 몸통 아랫 부분이 결합되어 있어 특이하다. 보통의 연리목은 같은 수종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안내문에 보면 이 나무 앞에서 서로 손을 꼭 잡고 기도하면 부부간의 애정이 더욱 두터워지고, 남녀간의 애정이 이루어지며 소원성취한다고 되어..

천년의나무 2007.08.28

함양 상림

고향이함양인 동료로부터 상림 자랑을 들은 차에 주말을 기다려 애마의 방향을 그쪽으로 돌렸다. 상림은 천년이 넘은 인공숲이라는 것, 우리나라 최고의 아름다운 숲이라는유혹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상림(上林)은 함양읍내 위천(渭川) 강가에 있는 숲으로 신라 말기인 진성여왕 때(재위 887-897)에 당시 태수였던 최치원 선생이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둑을 쌓고 만들었다고 한다.무려 1100년이 넘는 인공숲이다. 수많은 나무들이 죽고나고를 반복하며 지금껏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롭기만 하다. 100m 안팎의 폭으로 길게 조성된 상림의 면적은 현재 약 6만 평이고, 100여 종이나 되는 2만여 그루의 다양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주된 수종은 낙엽활엽수인 참나무와 서어나무 종류라고한다. 상림의 특징은 인..

천년의나무 2007.08.27

보문사 은행나무

석모도 보문사에는 강화군에서 보호수로 지정한 은행나무가 있다. 안내문에는 이 나무의 관리자는 삼산면장이고, 수령은 400년으로 적혀 있다.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은행나무이기 때문에 별로 색다른 느낌은 없지만 연륜에 비해서 나무가 왠지 초라하게 보인다. 초록색 은행잎으로 덮여있어야 할 나무가 잎도 부족하고 왠지 내복만 입고 있는사람처럼 썰렁하고 민망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언제 했는지는 모르지만 가지치기가 너무 심하게 되어 있다. 한여름인데 잎도 잘 나지 못하는 걸 보면 나무의 생육에 지장을 줄 정도가 아닌가 싶다. 왜 보호수로 지정되기까지 한 나무를 이렇게 흉하게 만들었을까? 내 추측으로는 아마 이 나무가 뒤쪽의 절 건물을 가리기 때문에그랬지 않았나 싶다. 사실이 그렇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천년의나무 2007.08.20

소수서원 솔숲

소수서원이 고향집에서 가까이 있어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들렀지만 주변 솔숲은 최근에 들어서야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기사 서원 자체에 대해서도 그동안은 별로관심이없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내 사는 땅에 대해서는 의외로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친구들이 부석사를 찬탄할 때 거기의 무엇이 그렇게 대단한지 의아스럽게 생각되기도 했었다. 한국인에게 소나무의 의미는 각별하다. 예로부터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나무로서 선비정신을 대표하는 나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서원이나 향교에서는 소나무를 흔히 심었다. 소나무는 선비들이 곁에 두고 아꼈던 나무였다. 소수서원 둘레에 소나무숲이 조성되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소수서원 둘레의 솔숲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지금도 곧게 뻗은 소나무 줄기에서 ..

천년의나무 2007.08.15

횡성휴게소 산사나무

영동고속도로에 있는 횡성휴게소 광장에 산사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별로 크지 않은 나무지만 안내문에는 수령이 약 150년으로 적혀 있다. 줄기를 보면 그 정도 나이가 충분히 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산사나무 자체가 그렇게 크게 자라는 나무는 아닌 것 같다. 나무 둘레에는 둥글게 의자가놓여 있어 여행객들이 나무 아래서 잠시 쉴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런 풍경을 보면 마음이 절로 흐뭇해진다. 휴게소를 만들 때 나무를 베어낼 수도 있었겠지만, 이렇게 나무도 살리고 또 그 나무 그늘 아래에쉬어갈 쉼터를 만든 마음씀이 고맙기 때문이다. 인공적인 그늘막보다 훨씬 더 운치가 있지 않은가. 산사(山査)나무는 주로 북쪽 지방에서 자라는 내한성이 강한 나무다. 우리 말로는 아가위나무라고도 하는데, 북한에서는 찔광나..

천년의나무 2007.07.23

궁정동 회화나무

궁궐이나 그 주변에서는 오래된 회화나무를 자주 볼 수 있다. 회화(懷花)나무를 중국에서는 '학자수(學者樹)'라고도 부른다는데 주나라 때부터 궁내에 심었다고 한다. 나무 자체가 단정하고 품위가 있으니사대부들이 좋아했을 것은 당연하다. 이 회화나무는 서울시 보호수로 청와대와 작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예전에 안가가 있던 곳인데 지금은 무궁화공원으로 변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된 바로 그 역사의 현장이다. 아마 이 회화나무는 안가의 담장 안에서 그때의 비극적 장면을 생생히 지켜보았을 것이다. 작은 안내문에는 수령이 3백년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무 가까이에는 접근할 수가 없다. 바로 옆이 청와대라 경비원들이 일반인의 왕래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를 찍기 위해 조망이 좋은 길 건너편에가..

천년의나무 2007.07.13

헤이리 느티나무

경기도 파주에 있는 헤이리 문화예술마을은 10년 전부터 조성되고 있는 문화예술인들의 마을이다. 15만 평의 공간에집, 작업실, 갤러리, 카페 등으로 사용되는 예술적인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다. 생태마을을 지향한다는데 건물들은 페인트나 타일을 바르지 않고 담장도 없는 자연과 소통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서울에서 가까워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그런데 이 예술인 마을이 나에게는 너무 상업적 냄새가 나서별로 좋은 인상을 갖지 못했다. 현대의 트랜드가 돈과 문화라지만 여기서 순수한 예술의 향기를 맡기는 어려웠다. 대중과 가까이서 호흡하는 이런 문화적 장치도 필요하다는 생각이지만 예술이 지나치게 돈과 유희 쪽으로 기울어지는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이곳은 야경이 멋있다는데 환경생태마을이라면 밤에..

천년의나무 2007.07.10

삼인리 송악

송악에서는 삶의 처절함과 지난함이 느껴진다. 송악은 바위나 나무를 타고 오르는데 마치 밧줄 같은 줄기가 다른 물체를 감고 올라가는 모습은 처절한 생존경쟁의 현장 그대로이다. 특히 송악이 다른 나무를 감고 있을 때 그것은 서로간에 죽이느냐 죽느냐의 절박한 상황을 연출한다. 이때 송악은 짖궂은 심술꾸러기 같다.그리고 바위를 타고 오르는 송악 줄기는 바위 색깔 그대로를 닮았다. 그래서 나무가 아니라 바위의 한 부분으로 보인다. 송악은너무나 바위를 사모해서 아주 바위에 딱 달라붙었다. 그러나 너무 가까이 있는 것도 내 눈에는 무척 힘들어 보인다. 송악은 엄청난 욕심꾸러기다. 선운사 입구에 있는 이 삼인리 송악은 우리나라에 있는 송악 중에서 가장 크다. 줄기 둘레가 80cm에 이르고, 높이는 15m나 된다. 여기..

천년의나무 2007.06.05

동검도 서어나무

오래된 서어나무가 있다고 해서 일부러 동검도에 들렀다. 섬의 서쪽 해변가 마을에 부채살 모양으로 가지를 펼친 싱싱한 서어나무가 있었다.안내판에는 수령이 200년, 크기는 높이가 20m, 둘레가 3.2m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수종은 이상하게 소사나무로 적혀 있다. 서어나무와 소사나무가 비슷하긴 하지만 수목도감에 보면 서어나무와 소사나무는 엄연히 다른 나무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지 안내판이 도리어 헷갈리게 만든다. 서어나무 하면 근육질의 줄기가 우선 연상된다. 울퉁불퉁해서 재목이나 다른 용도로는 별로 쓰이지 못한다. 건조도 어렵고, 목재가 잘 썩는다고 한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별 쓸모 없는 나무다. 그러나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해변가의 방풍림으로 심기도 한다. 우연인지 내가 본 서어나무는 모두 바닷가..

천년의나무 2007.05.21

백련사 동백림

백련사 옆에 있는 이 동백림은 약 4천평의 넓이에 15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빽빽이 자라고 있다고 한다. 나무의 수령은 잘 알 수 없으나 키는 보통 5 - 6 m에 이른다. 수치상으로는 굉장히 넓은 면적이고 숫자도 많으나 숲속에 들어가면 숲 전체의 모습을가늠하긴 어렵다. 이번 여행에서는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넘어가는 길을 따라서 동백림의 일부만 들여다 보았다. 동백이 진지는 한참이 되었으나 아직도 땅에는 시든 동백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이놈들은 아마 아주 늦게 핀 동백일 것이다. 한 달 전 쯤만 왔어도 낙화한 동백의 처절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사실 동백은 나무에 핀 모습보다는 땅에 떨어진 풍경이 훨씬 더 눈길을 끈다. 붉은 꽃송이째 툭툭 떨어져 땅을 뒤덮은 풍..

천년의나무 2007.05.10

백련사 배롱나무

백련사에 들어섰을 때 다른 무엇보다 배롱나무에 눈을 빼앗겼다. 만경루 앞마당에 우뚝 서 있는 이 배롱나무는 여성적이고 부드러운 자태로 만경루의 투박하고 위압적인 모습을 잘 중화시켜주고 있었다. 수령이 약 400년이나 된다고 하니 내가 본 배롱나무 중에서도 아주 큰 편에 속했다. 붉은 꽃이 만개할 여름에 찾아왔다면 아마 더욱 장관이었을 것이다. 나도 이 배롱나무를 키워본 적이 있었다. 봄에 심은 나무가 늦게까지 잎을 내지않아 죽은 줄 알았는데 여름 가까이 되어서야 살아있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그리고 추위에 약하다는 말을 듣고 겨울이면 줄기를 감싸주며 정성을 들였건만 약간 소홀히 했던 한쪽 줄기는 죽어 버렸다. 반신불수가 된 나무를 보며 공원에서 보는 원형의 아름다운 수형을 가진 배롱나무는 얼마나 많은 정성..

천년의나무 2007.05.07

용궁사 느티나무

영종도에 있는 용궁사에는 오래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다. 각각 할아버지와 할머니나무로 이름 붙은 이 느티나무들은 수령이 1300 년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목이다. 이 정도 나이면 우리나라 느티나무 중 최고령에 해당된다. 두 나무 중 할아버지나무는 그런대로 생육 상태가 좋은 편이고, 할머니나무는 한 쪽 줄기가 완전히 죽어버렸다. 그래도 남은 줄기에서는 봄의 새잎이 파랗고 무성하게 돋아나고 있다. 나무 아래 길에서 윗방향으로 바라본 모양이 마침 역광이어서 힘있는 사진으로 찍을 수있었다. 용궁사(龍宮寺)는 신라 문무왕 10년(670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백운사(白雲寺)'로했다고 한다. 이 절 뒷산 이름이 백운산이다. 그러니까 느티나무는 절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는셈이다. 절 옆으로는 산으로 오르는 길이 나..

천년의나무 2007.05.04

월드컵공원 메타세콰이어

메타세콰이어(Metasequoia)는 화석으로서만 그 존재가 밝혀졌다가, 1940년대에 중국 양자강 부근에서 실제 나무가 발견되어 지금은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는 특이한 나무이다. 이 나무는 공룡시대 때부터 생존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니 은행나무와 더불어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나무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용도가 주로 가로수로 심고 있는데, 담양의 메타세콰이어 길은 유명하다. 북아메리카에는 세콰이어라는 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다. 오래된 세콰이어는 높이가 100여 m에 이르러 세계에서 큰 나무들은 대개 세콰이어가 차지하고 있다. 삼나무과의 이 나무들은 크고 오래 살기가 다른 나무들에 비해 월등한 모양이다. 거목으로 자란 세콰이어는 자연에 대한 외경감을 느끼게 할 정도로 웅장하다. 메타세..

천년의나무 2007.04.27

경회루 버드나무

경복궁 경회루 연못 둘레에는 버드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다. 역시 물과 버드나무는 잘 어울려서 물가를 따라 능수버들이 하늘거리는 풍경은 고궁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이곳은 경복궁에서도 경치가 좋은 곳이다. 그런데 버드나무들 가운데 특별히 눈에 띄는 버드나무가한 그루있다. 얼마나 모진 풍파를 겪었는지 이 나무는 옆으로 누워서 줄기가 비비 꼬여있고, 줄기 가운데로는 구멍까지 나 있어 너무나 안타깝다. 마치 누군가가 분재를 만들 듯 일부러 그렇게 장난을 친 것 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나무 끝에서는 지금 여느 버드나무와 마찬가지로 초록잎이 싱싱하게 돋아나고 있다. 안스러운 마음 가운데서도 그 불굴의 생명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이 나무 둘레에 철책을 치고 보호하고 있다. 나무 구실을 못하는 쓸모없는 ..

천년의나무 2007.04.25

하동 송림

섬진강을 찾아간 길에 하동 송림에 들렀다. 이곳 소나무숲은 조선 영조 21년(1745년)에 당시의 도호부사(都護府使)였던 전천상(田天祥) 공이 섬진강변의 바람과 모래를 막기 위해 소나무를 심은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약 8천평의 면적에 1000 그루 정도의 소나무가 강변을 따라 숲을 이루고 있다. 오래된 소나무는 수령이 300년 가까이 되는 셈이다. 이곳 송림은 섬진강의 넓은 모래사장과 조화를 이루어 말 그대로 백사청송(白沙靑松)의 절경이다. 바닷가에서는 방품림을 흔히 볼 수 있지만 강변의 이런 대규모의 멋진 방품림은 처음이다. 특히 주차장 가까이에 서 있는 한 그루 소나무의 S자로 휘어진 자태는 매혹적이었다. 송림은전체적으로 철책이 둘러처져 있다. 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다지만 모양새가 영 볼..

천년의나무 2007.03.07

죽녹원 대나무숲

죽녹원은 대나무의 고장인 담양군에서 조성한 대나무 숲이다. 밖에서 보이는 모습은 작은 동산 정도지만 안에 들어서면 빽빽한 대나무숲이 우리 같은 북쪽 지방 사람들에게는 이국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이렇게 풍성한 대나무 잔치는 처음이었다. 여기서 자라는 대나무는 왕대다. 왕대(Giant Timber Bamboo)는 참대, 늦죽, 고죽(古竹), 진죽(眞竹)으로 불린다는데 중국이 원산이고줄기는 청록색을 띠며 줄기와 가지는 거의 직각을 이룬다고 한다. 대나무의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곧게 뻗은 줄기와 그 줄기가 활처럼 휘어지며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다. 특히 대나무 잎이 서로 몸을 부비며 사각이는 소리는 자연의 소리 중에서도 일품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 대나무숲의 단점이라면 너무나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는 것..

천년의나무 2007.03.04

담양 메타세콰이어 길

어린 시절을 추억할 때 기억에 남아있는 것들 중 하나가 마을 앞을 지나는 신작로의 포플러 가로수 길이다. 10km 가까이 두 줄로 늘어선 포플러나무들, 그 미끈하게 뻗은 몸매와 가지에 무성하게 매달려있던 삼각형의 초록 이파리들이 바람에 팔랑거리는 모습은 지금도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떠오른다. 도로가 확장되면서 지금은 그 나무들이 다 없어졌지만 어디선가 그런 가로수 길을 만나면 내 유년이 기억이 살아나 지그시 눈을 감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가로수 길이 바로 담양의 메타세콰이어 길일 것이다. 몇 년 전엔가는 아름다운 가로수 길로 대상을 받은 적도 있었다. 메타세콰이어(Metasequoia)는 원래 중국이 원산이나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개량이 되었고 우리나라에 심어진 것도 대부분이 이 종류라고 ..

천년의나무 2007.03.03

의림지 제방숲

오래 전에 아이들을 인솔하고 제천 의림지에 들린 적이 있었다. 20년도 더 된 훨씬 전의 일이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던 차에 이번에 제천을 지나게 될 때 짬을 내어 의림지를 찾아보았다. 의림지(義林池)는 김제의 벽골제와 함께 원삼국시대에 축조된 저수지로 알려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의 우륵이 쌓았다고 하는데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호수가 유명하다는 것은 충청도를 가리키는 호서(湖西)라는 말이 이 호수의 서쪽지방이라는 의미이고, 제천의 옛 이름인 내제[큰 제방]이라는 의미도 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의림지는 세종 때에 정인지에 의해 두 차례 수축되었고, 1972년 장마에 둑이 무너져 이듬 해에 복구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호수 둘레는 약 1.8km에 이른다. 제방 둑에는 영호정 등..

천년의나무 2007.02.16

광천리 관음송

이 나무는 영월군 남면 광천리에 있어 보통 광천리 관음송이라 불리는데 영월 청령포를 찾아가면솔숲 가운데에 있는 이 나무를 만날 수 있다. 청령포는 단종이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다. 관음송(觀音松)이라는 이름도 이 나무가 당시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觀], 들어서[音] 붙여졌다고 한다. 그래서 이 나무의 수명도 대략 600여 년으로 추정한다. 17 세의 어린 단종이 이 나무의 갈라진 가지 사이에 앉아서 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청령포 솔숲에 있는 소나무들 중에서도 이 관음송은 군계일학으로 뛰어나다. 땅에서 올라온 줄기가 아이들 키 높이 정도되는 곳에서 둘로 갈라졌는데 두 줄기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기상이 대단하다. 그 높이가 30 m에 이른다니 왠만한 고층 아파트 높이에 해당된다. 노산군(魯..

천년의나무 2007.02.12

청령포 소나무 숲

한국인을 말할 때 '소나무에서 나고 소나무에서 살다 소나무에서 죽는다'고 한다. 그만큼 소나무는 한국인과 가깝다. 모든 한국 사람은 소나무로 만든 집에서 태어나 푸른 생솔가지를 꽂은 금줄을 치고 지상에서의 첫날을 맞는다. 자라면 소나무 우거진 솔숲이 놀이터가 된다. 봄이면 물오른 솔가지를 꺾어 송기를 갉아먹으며 허기를 달래고 솔 연기를 맡으며 살다 소나무관 속에 육신을 묻는다. 그리고 무덤가엔 둥그렇게 솔을 심어 저승의 집을 꾸민다. 한국의 솔은 흔히 부르는 이름인 '소나무'와 '곰솔' 두 종류로 나눈다. 그리고 소나무의 대표적 수종으로는 육송, 적송, 반송, 금강송 등이 있고, 곰솔은 보통 해송(海松)이라 불리며 바닷가를 따라 자라고 있다. 전세계의 소나무는 100 종 가까이 된다는데 우리나라 만큼소나..

천년의나무 2007.02.09

오죽헌 오죽

대는 일찍부터 질기고 매끄러운 특성 때문에 생활용품으로 널리 사용되어 왔다. 그리고 잘 부러지지 않는 곧은 성격 때문에 정절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매화, 난초, 국화와 함께 사군자라 불리었다. 그 중에서도 오죽은 다른 대보다 색채가 아름답고 윤기가 있으며 질겨 더욱 사랑을 받았다. 줄기의 빛깔이 검은색이어서 오죽(烏竹)이라고 불리며 신성한 곳에서만 뿌리를 내린다고 하여 예부터 소중하게 취급 받았고, 담뱃대와 부채, 가구를 만드는데 쓰였다. 죽순은 5-6월에 나오는데 첫해는 초록색이지만 다음해부터 검어진다. 강릉 오죽헌(烏竹軒)이 바로 이 오죽으로 유명하다. 오죽헌은 원래 율곡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의 집이다. 원래 신사임당 외조부의 집이었는데, 외조부가 아들이 없어 무남독녀인 신사임당의 어머니에게 집을 상속했..

천년의나무 2007.02.08

관청리 은행나무

이 은행나무는 강화도 관청리 고려궁지 옆에 있다. 고려궁지는 고려가 대몽항쟁을 위해 1232년에 수도를 개성에서 이곳으로 옮겼을 때 건설되었다. 그 뒤 1270년에 몽고와 화의가 성립되어 개성으로 환도한 뒤 이 터에는 조선시대에 행궁이나 강화유수부 건물들이 들어섰다고 한다. 그러니까 여기는 조선시대 주요 관청들이 있었던 곳이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관청리인 것 같다. 추측컨대 이 은행나무도 어느 관청 건물 마당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가까이는 프랑스에 의해서 기타 여러 차례 병화를 겪으며 관청이 있던 곳은 불에 타고 축소되어 지금은 마을이 들어선 것 같다. 고려궁지 앞 쪽에서는 그런 옛 터의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 이 은행나무는 경기도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안내문에 의하면 나무의 나이는 약 70..

천년의나무 2007.01.28

용문사 은행나무

용문산 은행나무는 1100살로 우리나라 뿐 아니라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라고 한다. 높이가 40m나 되는 키다리 은행나무인데 천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지금도 당당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이 나무에도 역시 유명인이 등장하는 전설이 만들어져 있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세자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가던 길에 심은 것이라는 전설이 있다. 935년 경순왕은 군신회의를 소집해 고려에 항복하기로 결정한다. 이에 마의태자는 천년사직을 하루 아침에 버리는 것에 반대했으나 결국 신라가 고려에 병합되자 금강산에 들어가 베옷[麻衣]을 입고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먹으며 여생을 마쳤다. 다른 하나는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義相大士)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뿌리를 내려 이 은행나..

천년의나무 2007.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