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향기

흰명자꽃

샌. 2010. 4. 26. 16:49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안 구석에 피어 있는 흰명자꽃을 만났다. 여기에 산지도 3 년이 넘었는데 이제야 눈에 띄었다. 나무의 크기로 보아 최근에 심은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꽃이라면 유심히 살피는 편인데 그간 무심하게 지나치기만 했다.그렇게 첫 만남인데다 자주 보지 못하는 흰명자꽃이서 더욱 반가웠다. 흰명자꽃 색깔은 뽀얀 우윳빛에 가깝다. 붉은색의 명자꽃이 화려하고 고혹적이라면 흰명자꽃은 소박하면서 수수하다. 인생의 신산을 다 맛보고 모든 것을 비워낸 탈색의 경지가 느껴지기도 한다.

 

붉은색 명자꽃은 강렬하고 화려하지만 그만큼 슬프고 아프기도 하다. 뜨거운 만남 뒤에는 반드시 눈물의 이별이 진한 법이다. 명자꽃은 산당화(山棠花)라고도 부른다. 시인은 산당화 봉긋하게 피는 걸 보며 어머니와 순자의 눈물을 추억한다.

 

요란하게 골목을 누비며

깔깔 웃어대던 미쳐버린 뒷집 순자가

뜬금없이 퉁퉁 눈이 붓도록 울던 그 날처럼

뭉클뭉클 쏟아지기 시작하면 괜히 슬펐던

후드득 피눈물처럼 떨어져

내 마음을 아프게 하던 산당화가

올해도 봉긋하게 꽃망울을 달았습니다

새파랗게 질려서

밑동마다 꽃그늘 붉게 낭자하면

어쩌면 저리도 추할꼬, 그러셨던 그 꽃이

어김없이 계절을 건너왔네요

당신은 무당꽃이랬지요

산당화라고, 명자꽃이라고 가르쳐드려도

당신은 무당꽃이랬습니다

그 꽃이 말이에요 어머니

지금 푸른 치맛자락 감추고

입술연지 점점 짙게 칠하고 있어요

목매달아 죽었다던

순자의 눈물이 돼버린 산당화가

조금만 더 붉어지면 말이에요 어머니

당신 못마땅해 하는 말 올해도 듣고 싶어

새빨갛게 웃을 텐데요

 

- 산당화 피는 날에 / 김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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