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837

장자[96]

헤아려보면 사람이 안다는 것은 모르는 것만 못하고 살아 있는 시간은 살아 있지 못한 시간보다 못한 것이다. 지극히 작은 것으로 지극히 큰 영역을 궁구하려 하므로 혼미하고 어지러워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여러 가지로 비추어본다면 어찌 단정할 수 있겠는가? 털끝이 반드시 지극히 미세한 것의 끝이라고. 어찌 단정할 수 있겠는가? 천지가 반드시 지극히 큰 것의 궁극적인 경지라고. 計人之所知 不若其所不知 其生之時 不若未生之時 以其至小 求窮其至大之域 是故迷亂 而不能自得也 由此觀之 又何以知 毫末之足以定至細之倪 又何以知 天地之足以窮至大之域 - 秋水 2 하백(河伯)과 북해약(北海若)의 긴 대화 중 일부분이다. 둘의 대화에서는장자 철학의 주요한 논점이 말하여지고 있다. 그 철학적 내용에 대하여는 내가 설명할 ..

삶의나침반 2009.11.29

장자[95]

우물안 개구리에게 바다를 말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장소에 구애되기 때문이요, 매미에게 얼음을 말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때에 굳어 있기 때문이요, 편벽된 선비에게 도를 말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가르침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대가 강 언덕에서 나와 큰 바다를 보고 부끄러움을 알았으니 그대와는 더불어 큰 이치를 말할 수 있겠구나! 井蛙不可以語於海者 拘於虛也 夏蟲不可以語於氷者 篤於時也 曲士不可以語於道者 束於敎也 今爾於出於崖矣 觀於大海 乃知爾醜 爾將可與魚大理矣 - 秋水 1 강의 신인 하백(河伯)이 바다를 보고 나서 하는 탄식이 앞 부분에 나온다. "옛말에 백 가지 도를 들어도 내 것만 못하다고 생각한다더니 나를 두고 한 말이었구나!" 하백은 넓은 바다를 보고 나서야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깨닫고 부끄..

삶의나침반 2009.11.22

장자[94]

도는 본래 작은 행함이 아니고 덕은 결코 작은 앎이 아니다. 도리어 작은 지식은 덕을 손상하고 작은 행함은 도를 손상시킨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몸을 바르게 할 뿐이라고 했고 즐거움을 온전히 하는 것이 뜻을 얻었다고 말한 것이다. 道固不小行 德固不小識 小識傷德 小行喪道 故曰 正己而已矣 樂全之謂得志 - 繕性 2 장자가 말하는 '작은 앎'[小識]이란 무엇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지식을 말한다. 그 목적이 아무리 고상하더라도 무엇을 위한다거나 무엇을 이루려는 의지가 들어 있는 지식은 유위(有爲)일 뿐이다. 도리어 덕을 손상시키기만 한다. '작은 앎'의 결과인 '작은 행함'[小行]도 마찬가지다. 인위적이고 의도된 행위는 그것이 아무리 선행이나 또는 공익을 위한다는 명분이 있을지라도 도(道)를 손상시킨다. 오른손..

삶의나침반 2009.11.17

장자[93]

옛사람은 (차별이 생기기 이전의) 혼동 중에 있었으므로 세상과 더불어 하면서도 맑고 고요한 본성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 시절은 옴앙이 조화롭고 고요하여 귀신도 소란을 피우지 않았고 사시는 절도가 있어 만물은 손상되지 않고 뭇 생명이 수명을 다했으며 사람은 비록 지혜가 있어도 그것을 사용할 곳이 없었다. 이것을 일러 지극한 하나 됨(절대평등)이라고 말한다. 古之人 在混芒之中 與一世而得澹漠焉 當是時也 陰陽和靜 鬼神不擾 四時得節 萬물不傷 群生不夭 人雖有知 無所用之 此之謂至一 - 繕性 1 장자가 말하는 옛날이란 인간이 자연과 분리되기 전의 하나였던 상태를 말한다. 세상을 대상으로 보는 분별심이나 인간적 지식, 지혜도 없었다. 성서에서 그리고 있는 에덴동산과 비슷하다. 선악과를 따먹고 눈이 밝아져서 추방되었다는 ..

삶의나침반 2009.11.06

장자[92]

순수하고 소박한 도란 오직 신령스러움을 지키는 것이니, 지켜서 잃지 않으면 신과 하나가 되며 그 하나가 정미 신통하니 천륜과 부합하는 것이다. 시골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속된 사람은 이익을 중히 여기고 깨끗한 선비는 명예를 중히 여기며 어진 사람은 뜻을 숭상하고 성인은 정신을 귀하게 여긴다. 그러므로 소박하다는 것은 어울려도 잡스럽지 않은 것을 말하고 순수하다는 것은 정신이 이지러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능히 순수하고 소박함을 체현한 자를 진인이라 말하는 것이다. 純素之道 惟神是守 守而勿失 與神爲一 一之精通 合於天倫 野語有之 曰 衆人重利 廉士重名 賢人尙志 聖人貴精 故素也者 謂其無所與雜也 純也者 謂其不?其神也 能體純素 謂之眞人 - 刻意 2 여기에서 장자는 인간이 가야 할 길을 '순수하고 소박한 도'[純..

삶의나침반 2009.11.02

장자[91]

그러나 준엄한 뜻이 아니라도 고상하고 치세를 위한 인의가 없이도 수기(修己)하고 조정에 공명을 세우지 않더라도 다스려지고 속세를 등지고 강과 바다에 노닐지 않더라도 한가로우며 도인의 양생술이 아니라도 장수한다면 잃지 않음이 없으면서도 갖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맑고 고요하여 끝이 없으니 온갖 아름다움이 따른다. 이것이 천지의 도요, 성인의 덕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염담, 적막, 허무, 무위를 천지의 화평이요, 도덕의 바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若夫不刻意而高 無仁義而修 無功名而治 無江海而閒 不道引而壽 無不忘也 無不有也 澹然無極 而衆美從之 此天地之道 聖人之德也 故曰 夫염淡寂寞虛無無爲 此天地之平 而道德之質也 - 刻意 1 장자는 다섯 종류의 선비를 예로 들고 있다. 세상을 떠나 세속과 다르게 살아가는 ..

삶의나침반 2009.10.24

장자[90]

내 너에게 이르나니 삼왕오제의 다스림이란 명분은 다스림이라 하지만 실은 어지러움이 막심했다. 유묵이 숭상하는 삼왕의 지혜란 위로 일월의 밝음을 어그러지게 하고 아래로 산천의 정기를 배반하고 가운데로 사계절의 운행을 잃게 했다. 그들의 지혜란 전갈과 독별의 꼬리보다 혹독하여 눈에 띄지 않는 짐승들조차 타고난 본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도리어 스스로 성인이라 하니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진실로 부끄러움이 없는 자들이다. 余語汝 三王五帝之治天下 名曰治之 而亂莫甚焉 三皇之知 上悖日月之明 下山川之精 中墜四時之施 其知참於뢰치之尾 鮮規之獸 莫得安其性命之情者 而猶自以爲聖人 不可恥乎 其無恥也 - 天運 5 노자와 공자의 대화 중 일부인데 여기서도 도가의 역사관이 잘 드러나 있다. 태평성대라 불리는 삼..

삶의나침반 2009.10.17

장자[89]

학은 날마다 목욕을 하지 않아도 희고 까마귀는 날마다 검정 칠을 안 해도 검소. 흑백이란 자연이므로 분별할 것이 못 되며 명예란 볼거리에 불과한 것이라 키울 것이 못 되오. 샘물이 말라 고기들이 모두 뭍으로 나가 서로 물기를 끼얹고 거품으로 적셔주는 것은 강과 바다에서 서로 잊고 모른 척하는 것만 못할 것이오. 夫鵠不日浴而白 鳥不日黔而黑 黑白之朴 不足以爲辯 名譽之觀 不足以爲廣 泉학 魚相與處於陸 相구以濕 相濡以沫 不如相忘於江湖 - 天運 4 공자가 노자를 찾아가 한 수 배우기를 청했다. 노자는 공자가 말하는 인의(仁義)는 모기나 등에와 같아서 사람을 근심스럽게 하여 마음을 막히게 한다고 가혹하게 답한다. 도(道)가 사라진뒤에 인의로 세상을 구하려는 것은 마치 북을 치며 죽은 자식을 찾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삶의나침반 2009.10.11

장자[88]

옛 진인은 잠시 인에서 길을 빌리고 의에서 잠자리를 의탁하지만 자유로운 소요의 공허에 노닐며 진실로 간소한 밭에서 먹고 남을 빌리지 않는 들에 서 있었다. 소요는 인위가 없음이며, 간소함은 보양을 쉽게 하는 것이요, 빌리지 않음은 소모가 없는 것이다. 옛날에는 이를 일러 진리를 캐는 놀이라고 했다. 古之至人 假道於仁 託宿於義 以遊逍遙之虛 食於苟簡之田 立於不貸之圃 逍遙無爲也 苟簡易養也 不貸無出也 古者謂是采眞之遊 - 天運 3 이 대목에서는 '진리를 캐는 놀이'[眞之遊]라는 표현에 눈길이 간다. 인생이란 유쾌한 놀이가 되어야 한다.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고상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즐기며 자족할줄 모른다면 삶의 멍에가 될 수밖에 없다. 마치 어린아이가 소꿉장난을 하며 놀듯이 인생도..

삶의나침반 2009.10.10

장자[87]

옛날 서시는 가슴병이 있어 마을에 살 때 자주 눈을 찡그렸다. 마을에 추인이 그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여 마을에 돌아오자마자 자기도 가슴을 부여안고 눈을 찡그리고 다녔다. 마을의 부자들은 그것을 보자 문을 걸어 잠그고 문밖 출입을 하지 않았으며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은 그것을 보자 처자식의 손을 끌고 마을을 떠나 달아나 버렸다. 그녀는 찡그린 모습이 아름다운 것만 알았지 그 까닭을 몰랐던 것이다. 故西施病心 而빈其里 其里之醜人 見而美之 歸亦捧心 而빈其里 其里之富人見之 堅閉門而不出 貧人見之 설妻子而去之走 彼知빈美 而不知빈之所以美 - 天運 2 서시(西施)는 춘추전국시대에 월(越) 나라의 미인이었다. 중국의 4대 미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녀의 모든 행동은 그 시대의 여자들에게 모방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삶의나침반 2009.09.29

장자[86]

그러므로 공경함으로써 효도하기는 쉽지만 사랑함으로써 효도하기는 어렵고 사랑으로 효도하기는 쉬우나 친지를 잊기란 어렵고 친지를 잊기는 쉬우나 나를 잊게 하기는 어렵고 친지가 나를 잊게 하기는 쉬우나 천하를 두루 잊기란 어렵고 천하를 두루 잊기는 쉬우나 천하로 하여금 나를 잊게 하기는 어렵습니다. 故曰 以敬孝易 以愛孝難 以愛孝易 以忘親難 忘親易 使親忘我難 使親忘我易 兼忘天下難 兼忘天下易 使天下겸忘我難 - 天運 1 일상의 효조차 실천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장자가 말하는 '효 넘어의 효'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부모[親]를 잊고 나[我]를 잊으라는 것은 효를 하고 있다는 의식조차 들지 않는 경지라 할 수 있다. 예수가 말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가르침과 통한다. 그런데 더 나아가 천하를 잊..

삶의나침반 2009.09.19

장자[85]

환공이 마루 위에서 독서를 하는데 마루 아래서는 윤편이 바퀴를 만들고 있었다. 윤편은 망치와 끌을 놓고 올라가 환공에게 물었다. "감히 묻습니다. 공께서 읽는 책을 무엇이라 합니까?" 환공이 답했다. "성인의 말씀이다." 윤편이 물었다. "성인이 있습니까?" 환공이 답했다. "이미 돌아가셨다." 윤편이 말했다. "그러면 군주께서 읽은 책들은 죽은 사람의 시체일 뿐입니다." 환공이 말했다. "과인이 독서를 하는데 공인 따위가 어찌 용훼하는가? 나를 설득하면 좋지만 설득하지 못하면 죽일 것이다." 윤편이 말했다. "신복합니다. 신이 하는 일로 본다면 바퀴를 깎는데 느슨하게 하면 헐거워 견고하지 못하고 단단히 조이면 빡빡하여 들어가지 않습니다. 느슨하지도 않고 빡빡하지도 않게 하는 것은 손으로 얻어지고 마음으..

삶의나침반 2009.09.11

장자[84]

노담이 물었다. "인의는 사람의 본성인가?" 공자가 답했다. "그렇습니다. 군자는 인이 없으면 안민(安民)할 수 없고 의가 없으면 살릴 수 없으니 인의는 참으로 사람의 본성입니다. 인의가 아니면 장차 어찌 다스리겠습니까?" 노담이 말했다. "묻겠는데 무엇을 인의라고 하는가?" 공자가 답했다. "마음속으로 만물과 함께 즐거워하고 겸애하고 무사(無私)하다면 이것이 인의의 진실된 모습입니다." 노담이 말했다. "그럴까? 뒷말은 위태롭구나! 대저 겸(兼)이란 우원한 것이 아닐까? 사(私)를 없애겠다는 것 또한 사사로움일 뿐이다. 그대가 만약 온 천하 사람들에게 양생을 잃지 않도록 한다면 천지는 본래의 상도가 보존될 것이다. 그대도 역시 천지의 덕을 본받아 행하고 도를 따라 나아가면 이미 지극한 것이거늘, 또 어..

삶의나침반 2009.09.04

장자[83]

옛날 순이 요임금에게 물었다. "천왕의 마음씀은 어떻게 합니까?" 요임금이 답했다. "나는 하소연할 곳이 없는 자를 오만하게 대하지 않고 궁색한 민중을 버리지 않으며 죽은 자를 괴로워하고 어린이를 사랑하고 과부를 애통해한다. 이것이 내 마음씀이다." 순이 말했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그러나 위대하지는 못합니다." 요임금이 물었다. "그러면 어찌해야 하느냐?" 순이 답했다. "하늘이 덕성스러우면 땅은 안녕하며 일월이 비추면 사시는 운행합니다. 낮과 밤이 상도가 있고 구름이 운행하여 비가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요임금이 말했다. "나는 집착하고 요란스러웠구나! 그대는 하늘에 부합했는데, 나는 사람과 부합했구나!" 昔者舜問於堯 曰 天王之用心何如 堯曰 吾不敖無告 不廢窮民 若死者 嘉孺子 而哀婦人 此吾所以用心也..

삶의나침반 2009.08.30

장자[82]

대저 허정, 염담, 적막, 무위는 천지의 화평이요, 도덕의 지극함이다. 그러므로 제왕이신 성인은 한가할 뿐이다. 한가하면 허(虛)하고, 허하면 실(實)하고, 실하면 서로 화락한다. 허하면 고요하고, 고요하면 동(動)하고, 동하면 얻는다. 고요한 것은 무위함이요, 무위하면 일을 맡아 책무를 다한다. 夫虛靜恬淡寂漠無爲者 天地之平而道德之至 故帝王聖人休焉 休則虛 虛則實 實則倫矣 虛則靜 靜則動 動則得矣 靜則無爲 無爲也則任事者責矣 - 天道 2 장자가 생각하는 마음의 근본 자리는 허정, 염담, 적막, 무위라는 네 단어로 나타낼 수 있다. 그는 이것을 천지를 화평케 하는 것이요, 도덕의 근본이라고 했다. 네 단어의 의미를 구분하기보다는 허정을 대표 개념으로 써도 될 것 같다. 허정(虛靜)이란 마음에 잡념이나 망상이 없..

삶의나침반 2009.08.25

장자[81]

성인의 고요함은 고요한 것이 좋아서 고요한 것이 아니라 만물이 성인의 마음을 어지럽게 할 수 없으므로 고요한 것이다. 물이 고요하면 수염을 밝게 비추고 평온하여 수준기에 맞는다. 그래서 훌륭한 목수가 법으로 취하는 것이다. 물이 고요하면 이처럼 밝은데 하물며 정신이 고요하면 더할 나위 있겠는가? 성인의 마음은 고요하여 천지의 거울이요, 만물의 거울이다. 聖人之靜也 非曰靜也善 故靜也 萬物無足以뇨心者 故靜也 水靜則明燭염眉 平中準 大匠取法焉 水靜猶明 而況精神 聖人之心 靜乎 天地之鑑也 萬物之鏡也 - 天道 1 마음의 으뜸 경지는 ‘고요함’[靜]이다. 그것은 거울이나 고요한 호수와 같아서 외물을 비추기만 할 뿐 자신이 흔들리지는 않는다. 다른 말로 하면 ‘마음의 평화’이다. 도(道)는 쉼 없이 운행하며 만물을 생성..

삶의나침반 2009.08.12

장자[80]

양자와 묵자는 비로소 홀로 발돋음을 하고는 스스로 뜻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말하는 얻음이 아니다. 얻은 것이 곤궁함인데 그것을 얻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새장 속에 갇힌 비둘기나 올빼미도 역시 뜻을 얻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而楊墨乃始離趾 自以爲得 非吾所爲得也 夫得者困 可以爲得乎 則鳩효之在於籠也 亦可以爲得乎 - 天地 11 산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고, 봉우리도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자신이 가는 길만이바른 길이고, 자신이 오르는 봉우리만이 최고봉이라고 주장한다면 그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종교든 이념이든 그 어떤 깨달음이든 진리독점주의만큼 어리석고 위험한 것도 없다. 그것은 자신이 걷는 길만이 정상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

삶의나침반 2009.07.30

장자[79]

길 가는 세 사람 중에 한 사람만이 미혹되었다면 목적지를 갈 수 있을 것이다. 미혹된 자가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미혹되면 아무리 노력해도 이룰 수 없다. 미혹된 자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온 세상이 미혹되었다. 내가 비록 인도하려고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슬픈 일이 아닌가? 훌륭한 음악은 속인의 귀엔 들리지 않고 절양과 황화 같은 부화한 속악(俗樂)에는 환호한다. 이처럼 고귀한 담론이 대중의 마음에 와 닿지 않으니 참된 말은 나타나지 않고 속된 말만 기승을 부린다. 옹기소리와 종소리가 엇갈리니 갈 곳을 모른다. 지금은 온 천하가 미혹되었으니 내가 비록 향도한다 한들 어찌할 수 있겠는가?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힘쓰는 것은 또 하나의 미혹이다. 그러므로 포기하고 추구하지 않는 것만 못..

삶의나침반 2009.07.18

장자[78]

지극한 다스림이 있었던 고대 원시공산사회에서는 어진 자를 높이거나 능한 자를 부릴 필요도 없었다. 윗사람이란 표준일 뿐이었고 백성은 야생의 사슴이었다. 단정했으나 의(義)를 행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서로 사랑했으나 인(仁)을 행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성실했으나 충(忠)을 행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합당했으나 신의(信義)를 지켰다고 깨닫지 못한다. 준동할때 도우러 갔으나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까닭으로 행적도 자취가 없고 사업도 전해짐이 없다. 至治之世 不尙賢不使能 上如標枝 民如野鹿 端正而不知以爲義 相愛而不知以爲仁 實而不知以爲忠 當而不知以爲信 준動而相使 不以爲賜 是故行而無跡 事而無傳 - 天地 9 기세춘 선생은 장자가 그리는 이상세계를 원시공산사회라고 표현했다. 그것은 인위적인..

삶의나침반 2009.07.07

장자[77]

기계가 있으면 반드시 기계를 부리는 자가 있고 기계를 부리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기계의 마음이 생기고 가슴속에 기계의 마음이 생기면 순백의 바탕이 없어지고 순백의 바탕이 없어지면 정신과 성품이 안정되지 못하고 정신과 성품이 불안정하면 도가 깃들 곳이 없다고 했소. 내가 두레박 기계를 몰라서가 아니라 부끄러워서 쓰지 않는 것이오. 有機械者 必有機事 有機事者 必有機心 機心存於胸中 則純白不備 純白不備 則神生不定 神生不定者 道之所不載也 吾非不知 羞而不爲也 - 天地 8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이 유세를 마치고 진(晉) 나라로 돌아가는 길에 밭에서 일하고 있는 농부를 만났다. 그는 옹기그릇을 가지고 들고나며 우물에서 물을 퍼내고 있었다. 자공이 농부에게 이렇게 말한다. "만약 기계를 쓴다면 하루에 백 두렁의 밭에..

삶의나침반 2009.07.02

장자[76]

위대한 성인이 천하를 다스림은 민심을 자유롭게 뒤흔들어 그들 스스로 교화를 이루고 습속을 바꾸게 하여 그 도적의 마음을 들춰내어 없애고 모두 자주적 의지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오. 마치 민중의 본성이 스스로 하는 것 같아서 민중은 그렇게 된 까닭을 모르오. 大聖之治天下也 搖蕩民心 使之成敎易俗 擧滅其賊心 而皆進其獨志 若性之自爲 而民不知其所由然 - 天地 7 장자에서 말하는 '성인의 다스림'은 플라톤의 '철인정치'를 닮았다고 지난 회에서 말했다. 대의제 민주주의를 최상의 정치제도라고 하지만우매한 민중의 투표가 세상을 변화시키기는 힘들다. 소수의 지배자가 여론을 조작하면서 자신의 의도대로 정책을 결정하는 경우를 우리는 지금도 접하고 있다. 그래서 정치인이 아닌 성인이 다스리는 나라를 상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삶의나침반 2009.06.26

장자[75]

무릇 머리와 발은 있어도 마음과 귀가 없는 자들이 많다. 형체 있는 것은 형체도 형상도 없는 것으로 돌아갈 뿐 모든 존재는 다함이 없다. 운동은 그치고, 죽음은 살고, 실패는 흥기한다. 이에 또한 그것을 원망하는 까닭은 다스림이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다. 물(物)도 잊고 천(天)도 잊어라. 그것을 일러 자기를 잊은 것이라 한다. 자기를 잊은 사람을 자연으로 돌아갔다고 말한다. 凡有首有趾 無心無耳者衆 有形者與無形無狀 而皆存者盡無 其動止也 其死生也 其廢起也 此又非其所以也 有治在人 忘乎物 忘乎天 其名爲忘己 忘己之人 是之謂入於天 - 天地 6 예수께서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새겨들으시오."라고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예수가 바로 옆에 있다한들 마음의 귀가 열린 사람만 그분의 말씀을 알아듣는다. 마음의 귀는 진리를..

삶의나침반 2009.06.17

장자[74]

태초에는 무(無)도 없었고, 명(名)도 없었다. 여기에서 하나가 생겼으며 하나이므로 아직 형체가 없었다. 이 하나를 얻어 만물이 태어나는데 이것을 덕(德)이라 한다. 이때 형체가 없던 것이 분별이 생기는데 또 그것이 끊임이 없이 이어지니 명(命)이라고 한다. 그 하나가 머물기도 하고 운동하기도 하며 사물을 낳고 사물이 이루어지면 무늬가 생기는데 그것을 형체라 한다. 형체가 정신을 보존하여 각각 형상(이데아)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을 성품이라 한다. 성품을 닦으면 덕으로 돌아가며 덕이 지극하면 태초와 같아진다. 태초와 대동하면 허(虛)하고, 허하면 크다. 부리가 모여 울면 온갖 새들의 울음소리가 합창하듯 천지와 더불어 합해지면 그 합해진 것은 천지를 아우르는 벼리처럼 끝이 없고 어리석은 듯, 무지한 듯하다...

삶의나침반 2009.06.14

장자[73]

자고가 답했다. "옛날 요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때는 백성들이 상이 없어도 권면했고, 벌이 없어도 공경했소. 지금 그대는 상벌을 시행하나 백성들은 어질지 못하고 그로부터 덕은 쇠해졌고 형벌이 일어났소. 후세의 어지러움은 이로부터 시작된 것이오. 그대는 어찌 돌아가지 않소? 내 일을 방해하지 마시오!" 자고는 열심히 밭을 갈 뿐 돌아보지도 않았다. 子高曰 昔堯治天下 不賞而民勸 不罰而民畏 今子賞罰 而民且不仁 德自此衰 刑自此立 後世之亂 自此始矣 夫子闔行邪 無洛吾事 읍읍乎耕而不顧 - 天地 4 요순이 다스릴 때 백성자고(伯成子高)는 제후로서 임금을 도왔다. 그러나 우(禹)가 임금이 되자 사직을 하고 시골로 돌아가 농부가 되었다. 우임금은 직접 자고를 찾아가 함께 국가를 경영하자고 청했다. 그러나 자고의 대답은 단호..

삶의나침반 2009.06.09

장자[72]

봉인이 말했다. "처음에 저는 당신이 성인인 줄 알았는데 이제 알고 보니 군자 정도일 뿐이군요. 하늘이 만민을 낳을 때는 반드시 직분을 줍니다. 아들이 많으면 각각 직분이 주어질 터인데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부유해지면 남들에게 나누어주면 되니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대저 성인은 메추라기처럼 거처하고 새 새끼처럼 먹고 새처럼 날아다니니 종적이 없습니다. 천년을 살다가 싫으면 세상을 떠나 선정으로 올라가 저 흰 구름을 타고 하늘고향에 이를 것입니다. 세 가지 걱정도 닥치지 못할 것이며 몸에 재앙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즉 어찌 욕됨이 있겠습니까?" 요임금이 그를 따라가면서 말했다. "청컨대 묻고자 합니다." 봉인이 말했다. "물러가라!" 封人曰 始也 我以女爲聖人邪 今然君子也 天生萬民 必授之職 多男子而授之職..

삶의나침반 2009.05.28

장자[71]

황제 훤원씨가 적수의 북쪽을 노닐며 곤륜산에 올라 남쪽을 관망하고 돌아오다가 검은 진주를 잃어버렸다. 지혜를 시켜 찾아오게 했으나 찾지 못했다. 눈 밝은 이주에게 찾아오게 했으나 찾지 못했다. 소리에 밝은 끽후도 찾지 못했다. 이에 상(象)을 잊어버린 상망에게 시켰더니 그는 진주를 찾았다. 황제가 말했다. "이상한 일이다. 형상을 잊은 그가 진주를 찾아낼 수 있다니!" 黃帝游乎 赤化之北 登乎崑崙之丘 而南望還歸 遺其玄珠 使知索之而不得 使離朱索之而不得 使喫후索之而不得 乃使象罔 象罔得之 黃帝曰 異哉 象罔乃可以得之乎 - 天地 2 선불교와 도가는 닮은 점이 많다.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에 들어온 불교가 도가의 영향을 받으면서 선불교라는 독특한 정신세계를 만들었다. 교외별전(敎外別傳), 불립문자(不立文字)가 뜻하는..

삶의나침반 2009.05.22

장자[70]

그러한 자는 금을 산에 감추고 구슬을 못에 감춘 것 같고 재화를 이(利)로 취하지 않고, 부귀를 가까이하지 않으며 장수를 즐기지 않고 요절을 슬퍼하지 않는다. 또 그러한 자는 영달을 영화롭다 하지 않고 궁핍을 추하다 하지 않으며 일세의 이익을 가로채 자기가 사사롭게 얻은 것으로 여기지 않고 천하를 다스려도 자기가 높은 자리에 있다고 여기지 않고 혹높은 자리에 있으면 밝기만 하다. 그에게는 만물이 한 몸이요, 사생이 같은 모습이다. 若然者 藏金於山 藏珠於淵 不利貨載 不近貴富 不樂壽 不哀夭 不榮通 不醜窮 不拘一世之利 以爲己私分 不以王天下爲己處顯 顯則明 萬物一府 死生同狀 - 天地 1 여기서는 군자(君子)의 성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편에 나오는 군자라는 용어나, 인(仁)과 치(治)를 긍정하는 내용 등이 ..

삶의나침반 2009.05.09

장자[69]

구름의 주신 운장이 동해의 신목 부요를 지나다가 홍몽을 만났다. 홍몽은 마침 넓적다리를 두드리며 참새처럼 뛰어놀고 있었다. 운장은 그것을 보느라고 갑자기 멈추어 망연히 서 있었다. 운장이 말했다. "노인장은 뉘신지요? 노인장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홍몽은 놀기를 그치지 않으면서 운장에게 대답했다. 홍몽이 말했다. "놀고 있다!" 雲將東遊 過扶搖之枝 而適遭鴻蒙 鴻蒙方將부비雀躍而遊 雲將見之 상然止 지然立 曰 수何人邪 수何爲比 鴻蒙부비雀躍不輟 對雲將 曰 遊 - 在宥 5 이번에는 운장과 홍몽의 대화인데 여기서는 그 내용보다도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에 주목한다. 운장은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고 홍몽은 지인(至人)의 상징이다. 운장이 스승을 만나서 놀란 것은 놀고 있는 스승의 모습이다. 스승은 명상에 잠긴 도사의..

삶의나침반 2009.05.02

장자[68]

지극한 도의 경지는 깊고 멀어서 모양 지을 수 없고 지극한 도의 극치는 아득하고 고요하여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다. 오직 정신을 안으로 간직하여 고요히 있으면 몸이 스스로 바르게 된다. 반드시 고요하고 맑게 하여 그대의 몸을 괴롭히지 말고 정신을 어지럽히지 말아야 잘 살 수 있다. 눈으로 보는 것이 없고, 귀로 듣는 것이 없고, 마음으로 아는 것이 없게 하여 네 정신이 네 몸을 지키면 잘 살 것이다. 네 안을 삼가고 네 밖을 막아라! 至道之精 窈窈冥冥 至道之極 昏昏默默 無視無聽 抱神而靜 形將自靜 必靜必淸 無勞女形 無搖女精 乃可以長生 目無所見 耳無所聞 心無所知 女神將守形 形乃長生 愼女內 閉女外 - 在宥 4 장자에서 이 부분은 도교(道敎)의 냄새가 풍긴다. 장생(長生)이라는 말도 나오고, 유심..

삶의나침반 2009.04.25

장자[67]

나는 말할 수 없다. 성인과 지혜가 사람을 구속하는 형틀의 고리가 되지 않고 인의가 손발을 묶는 질곡의 자물쇠가 되지 않는다고!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유가들이 걸주와 도척의 효시가 되지 않았다고! 그러므로 노자는 군왕을 없애고 그들의 지혜를 버려야만 천하가 태평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吾未知 聖智之不爲桁楊接습也 仁義之不爲桎梏착예也 焉知 甑史之不爲桀척嚆矢也 故曰 絶聖棄知 而天下大治 - 在宥 3 장자는 지배 복종 관계의 정치 체제를 부정한 아나키스트였다. 반면에 노자의 도덕경은 군왕의 통치서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 부분 번역에서 '노자는 군왕을 없애고'는 오해의 여지가 있다. 물론 노자는 다른 사상가들과는 다르게 무위의 통치를 강조했다. 그런데 공자는 정치를 통해 세상을 개혁하려는 꿈을 가진 유세객이..

삶의나침반 2009.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