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803

장자[32]

송나라에 형씨들의 소국이 있었는데 가래나무, 잣나무, 뽕나무가 많아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 그것이 한두 줌 이상 크면 원숭이 말뚝으로 베어 가고, 서너 아름이 되면 고관집 용마룻감으로 베어 가고, 일고여덟 아름이 되면 귀인 부잣집의 널판잣감으로 베어 간다. 그래서 천수를 다하지 못하고 중도에 도끼에 찍혀 죽고 만다. 이것이 쓸모 있는 재목들의 환난이라는 것이다. 宋有荊氏者 宜楸栢桑 其拱把以上者 狙후之익者斬之 三圍四圍 求高名之麗者斬之 七圍八圍 貴人富商之家 求전傍者斬之 故未終其天年 而中道已夭於斧斤 此材之患也 - 人間世 6 이명박 정부의 슬로건이 실용주의다. 효율과 경쟁을 통해 국가 이익을 최대로 하겠다는 것인데, 잘못 하다가는 천박한 장사꾼적 셈법으로 나라를 운영할 위험이 크다. 든든한 도덕적 바탕이 없는 ..

삶의나침반 2008.08.06

장자[31]

그대는 저 사마귀를 모릅니까? 그놈이 성을 내면 팔을 벌려 마차를 막으려 합니다. 자기가 당해 내지 못할 것을 알지 못하는 겁니다. 이것이 그의 재능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경계하고 삼가십시오! 사마귀처럼 그대의 장점을 자꾸 자랑하면 그를 범하는 것이니 위태롭습니다. 汝不知夫螳螂乎 怒其臂以當車轍 不知其不勝任也 是其才之美者也 戒之愼之 積伐而美者 以犯之幾矣 - 人間世 5 장자 철학도 시대의 산물이다. 장자가 살았던 전국시대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약육강식의 시대였다.당시의 사회에 대한 비판 및 살아남기 위한 방법, 그리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사회를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장자는 내적 초월을 통해서 인간의 길을 찾으려 했고, 현실 참여보다는 정신의 자유를 중요시했다.죽음을 두려워하지는 않지만,하..

삶의나침반 2008.07.27

장자[30]

그가 어린아이가 되면 그와 더불어 어린아이가 되십시오! 그가 분수 없으면 그와 더불어 분수 없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가 허물없이 굴면 그와 더불어 허물없이 구십시오! 그와 소통하여 병통이 없는 경지로 들어야 합니다. 彼且爲영兒 亦與之爲영兒 彼且爲無町畦 亦與之爲無町畦 彼且爲無崖 亦與之爲無崖 達之入於無疵 - 人間世 4 성품이 나쁘기로 소문한 위나라 태자의 스승으로 임명된 안합(顔闔)이 거백옥을 찾아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한다. 이에 거백옥이 답한 내용 중 일부분이다. 어린아이가 되면 같이 어린아이가 되고, 분수 없이 놀면 같이 분수 없이 놀고, 허물없이 굴면 같이 그렇게 하라는 내용이다. 이것은 자유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무엇에도 거리낌 없고, 무엇과도 잘 어울린다. 마치 둥근 그릇에 담으면 둥근..

삶의나침반 2008.07.20

장자[29]

인력으로 어쩔 수 없음을 깨달아 운명처럼 편안히 하는 것이 덕의 지극함입니다. 남의 신하와 자식이 되는 것은 진실로 그것을 벗어던질 수 없는 것이니 일을 행함에 자기 몸을 잊는 것입니다. 어느 겨를에 삶을 즐기고 죽음을 싫어하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대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또한 만물을 타고 마음에 노닐며 멈추게 할 수 없는 순리에 맡기면 무위자연의 중앙을 보양함이 지극할 것입니다. 어찌 인위로 지어내서 보고하겠습니까? 천명을 이루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知其不可奈何 而安之若命 德之至也 爲人臣子者 固有所不得已 行事之精而忘其身 何暇至於悅生而惡死 夫子其行可矣 且夫乘物而遊心 託不得已 以養中至矣 何作爲報也 莫若爲致命 此其難者 - 人間世 3 섭공 자고(子..

삶의나침반 2008.07.12

장자[28]

인적이 없는 닫힌 문을 보라! 빈 방에 문틈으로 햇살이 비친다. 길하고 상서로움이 머문다. 대저 가기만 하고 멈추지 않으면 앉아서도 달리는 자라고 말한다. 瞻彼결者 虛室生白 吉祥止止 夫且不止 是之謂座馳 - 人間世 2 이 구절이 좋아 한때는 책상머리에 붙여놓고 매일 음송하기도 했다. '텅 빈 방에 환한 햇살'로 표현된 마음 상태는 내가 이르고 싶었던 이상이었다. 심재(心齋)란 마음을 비우는 것이고, 그렇게 세상과 자신과의 울타리를 헐 때 빛과 하나가 된다. 그런 연후에 세상에 나가 무슨 일이든 해도 무방하다고 공자는 안회에게 가르친다. 즉, 두려움이나 개인적 야망에서 벗어난 근본적인 마음 변화를 요구한 것이다. 안회의 정치 참여를 두고 시작된 말이지만 공자를 통해 장자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 '마음 비움'..

삶의나침반 2008.07.06

장자[27]

안회가 말했다. "감히 마음의 재계에 대해 묻습니다." 공자가 답했다. "너의 뜻을 전일하게 하라.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으라. 마음으로 듣지 말고 정기로 들으라. 듣는 것은 귀에 그치고 마음은 징험(徵驗)에 그친다. 정기라는 것은 비어 있어 사물을 모사한다. 오직 도는 빈 곳에 머무는 것이니 비우는 것이 마음의 재계다." 回曰 敢問心齋 仲尼曰 一若志 無聽之以耳 而聽之以心 無聽之以心 而聽之以氣 聽止於耳 心止於符 氣也者 虛而待 物者也 唯道集虛 虛者心齋也 - 人間世 1 안회가 공자에게 폭군이 다스리는 위 나라로 가서 정의를 펴 보겠다고 말한다. 여기서부터 공자와 안회의 긴 대화가 이어지는데, 결론은 심재(心齋)하라는 것이다. 여기 나오는 심재는 장자 사상를 나타내는중심 단어 중 하나다. .직역하면 '마..

삶의나침반 2008.06.29

장자[26]

선생이 태어난 것은 때를 만난 것이요 죽은 것은 자연에 순종한 것이네 때를 편안히 여기고 천리에 순응하면 슬픔과 기쁨이 들어올수 없지 옛사람은 이를 일러 천제(天帝)의 저울에서 해방됨이라고 말했네 適來夫子時也 適去夫子順也 安時而處順 哀樂不能入也 古者謂是 帝之懸解 - 養生主 4 노자가 죽자 벗이였던 진일(秦失)이 조문을 갔는데 곡만 세 번 하고 나왔다. 크게 슬퍼하지 않는 걸 보고 제자들이 의아하게 여겼다. 그런데 진일은 죽음에 대해서 슬퍼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이탈하는 것이며,형식적으로 곡하는 것 또한 옳지 않은 짓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것은 죽음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인 탓도 크다. 그러나 장자의 관점에서 미지(未知)는 두려움이 될 수 없다. 탄생과 ..

삶의나침반 2008.06.22

장자[25]

꿩은 비와 이슬을 맞으며 열 걸음에 한 번 쪼고 백 걸음에 한 모금 마시더라도 조롱 속에 갇혀 길러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먹고살기야 풍성하겠지만 그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澤雉十步一琢 百步一飮 不기畜乎樊中 神雖王不善也 - 養生主 3 이 구절이 좋아서 한 때는 '澤雉[못가의 꿩]'를 내 호로 써본 적도 있었다. 못가의 꿩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 고단한 일상을 살지라도 결코 조롱에 갇혀 길러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주인이 주는 먹이에 길들여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안락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자유이기 때문이다. 조롱이란 우리들을 옭아맨 속박과 굴레다. 또는 세상에 길들여지고 순치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인간 존재에 보편적인 것일 수도 있고, 개인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다만 대부분은 조롱..

삶의나침반 2008.06.15

장자[24]

백정이 문혜군을 위해 소를 잡았다. 손이 닿고 어깨를 기울이고 발로 밟고 무릎이 닿는 대로 삭삭 울리고 칼이 나가는 대로 쉭쉭 소리를 내는데 음악에 맞지 않음이 없어 '상림(桑林)'의 춤과 '경수(經首)'의 잔치에 알맞은 것 같았다. 문혜군은 감탄했다. "하! 훌륭하구나! 기술이 어쩌면 이런 지경에 이를 수 있단 말인가?" 백정은 칼을 내려놓고 대답했다. "제가 얻은 결과는 도(道)이며 기술보다는 우월한 경지입니다. 처음 소를 해체할 때는 보이는 것이 모두 소뿐이었습니다. 삼 년이 지나자 이제 소 전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방금 저는 소를 정신으로 대했을 뿐 눈으로 본 것이 아닙니다. 감관의 지각이 멈추면 정신이 움직입니다. 자연의 이치에 의지하여 큰 틈새로 들이밀고 큰 구멍을 통행하여 본래의 자연을 따..

삶의나침반 2008.06.08

장자[23]

우리의 삶은 유한하지만 지혜는 무한하다. 유한한 인생으로 무한한 지혜를 따르면 위태로울 뿐이다. 아서라! 지혜대로 행하는 것은 더욱 위태롭다. 좋은 일을 행해도 명예를 붙이지 말고 잘못을 행해도 형벌로 다그치지 말며 중정(中正)을 따라 무위자연의 상도(常道)를 행한다면 몸을 보전할 수 있고 생을 온전히 할 수 있으며 어버이를 봉양할 수 있고 수명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吾生也有涯 而知也無涯 以有涯隨無涯 殆已 已而爲知者 殆而已矣 爲善無近名 爲惡無近刑 緣督以爲經 可以保身 可以全生 可以養親 可以盡年 - 養生主 1 '양생(養生)'이란 삶을 건강하고 풍성하게 한다는뜻이다. 장자는 결코 현실과 동떨어진 은둔을 노래하는 철학자가 아니라는 것을 여기서도 알 수 있다. 마지막 구절의 '몸을 보전하고, 어버이를 봉양하고..

삶의나침반 2008.06.01

장자[22]

어느 날 장주는 꿈에 나비가 되었다. 훨훨 나는 나비가 된 것이 기뻤고 흔쾌히 스스로 나비라고 생각했으며 자기가 장주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금방 깨어나자 틀림없이 다시 장주였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는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장주와 나비는 반드시 분별이 있는 것이니 이와 같은 것을 사물의 탈바꿈[物化]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昔者 莊周夢爲胡蝶 허허然胡蝶也 自喩適志與 不知周也 俄然覺 則遽遽然周也 不知 周之夢爲胡蝶與 周與胡蝶則必有分矣 此之謂物化 - 齊物論 15 앞에서도 꿈 이야기가 나왔는데 장자는 여기서도 우리의 삶이 꿈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나비가 된 꿈도 깨어나서야 알았듯,내가 지금 나로살아가는 현실도 다른 나비가 꾸는 꿈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그것..

삶의나침반 2008.05.25

장자[21]

그늘이 그림자에게 물었다. "금방 당신은 걷다가 지금은 그치고 금방 앉았다가 지금은 일어섰소. 어찌 그대는 자주(自主)하는 지조가 없는가요?" 그림자가 답했다. "나는 나와 흡사한 모상이 있어서 그럴까요? 또 나를 닮은 모상도 그의 모상 때문에 그럴까요? 나는 뱀 허물이나 매미 허물을 닮아서 그럴까요? 어찌 그렇게 되는 까닭을 알겠으며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알까요?" 罔兩問景 囊子行今子止 囊子坐今子起 何其無特操與 景曰 吾有待而然者邪 吾所待又有待而然者邪 吾待蛇부조翼邪 惡識所以然 惡識所以不然 - 齊物論 14 과학 용어로는 '罔兩'은 반 그림자, '景'은 본 그림자를 뜻한다.반 그림자는 광원이 점이 아니라 일정한 크기가 있을 때 본 그림자 둘레에 생긴다. 그러니 반 그림자는 본 그림자를 따라 움직..

삶의나침반 2008.05.18

장자[20]

자연의 분계에 화합하고 혼돈의 무극에 따르는 것이 생을 다하는 방법일 것이오. 무엇을 자연의 분계에 화합한다고 말하는 것이오? 시(是)는 시가 아니요, 연(然)은 연이 아니라고 말하겠소. 시가 과연 시라면 시는 불시(不是)와 다를 것이오. 그러나 그것을 분별할 수 없소. 연이 과연 연이러면 연은 불연(不然)과 다를 것이오. 그러나 그것을 분별할 수 없소. 세월을 잊고 의리를 잊고 경계가 없는 대로 나아가시오! 그래서 경계가 없는 경지에 머무르시오! 和之以天倪 因之以曼衍 所以窮年也 何謂和之以天倪 曰 是不是 然不然 是若果是也 則是之異乎不是也 亦無辯 然若果然也 則然之異乎不然也 亦無辯 忘年忘義 振於無竟 故寓諸無竟 - 齊物論 13 시(是)와 비(非)의 세계 속에서 시와 비를 초월하며 살기는 말만큼 쉬운 일이 아니..

삶의나침반 2008.05.12

장자[19]

꿈속에서 즐겁게 술 먹은 자가 아침에는 통곡을 하고 꿈속에서 통곡을 한 자가 아침에는 명랑한 기분으로 사냥을 떠난다. 방금 그가 꿈을 꾸고 있었으나 그것이 꿈인 것을 알지 못한다. 꿈속에서 자기가 꿈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도 꿈을 깨고 나서야 그것이 꿈인 것을 안다. 역시 큰 깨달음이 있은 후에야 알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이 큰 꿈인 것을! 夢飮酒者 旦而哭泣 夢哭泣者 旦而田獵 方其夢也 不知其夢也 夢之中又占其夢焉 覺而後知其夢也 且有大覺 而後知此 其大夢也 - 齊物論 12 장자는 우리 인생은 한 바탕의 꿈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깨달음이란 인생이 꿈인 것을 아는 것이다. 꿈속에서는 꿈이라는 것을 모른다. 꿈에서 깨어나야 꿈을 꾸었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깨달음이란 '눈 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꿈이..

삶의나침반 2008.05.03

장자[18]

만약 일월 곁에서 우주를 품고 다스림이 입술처럼 부합하고 혼돈에 맡겨두고, 노예를 돕고 존중한다면 어떻겠나? 세상은 모두가 안달인데 성인은 우둔하며 삼만세를 한결같이 순수를 이루어 만물은 모두 자연 그대로 감싸고 덮어준다면 어떻겠나? 奚旁日月挾宇宙 爲其문合 置其滑혼以隸相尊 衆人役役聖人愚芚 參萬歲而一成純 萬物盡然而以是相蘊 - 齊物論 11 구작자(瞿鵲子)의 질문에 대하여 장오자(長梧子)가 성인의 경지에 대해 설명한 내용이다. 모든 종교나 가르침에서는 이상적으로 숭앙하는 인간형이 있다. 노장에서의 성인은 무위(無爲)가 내면화된 초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세상을 벗어나 있는 은둔자는 아니다. 세상 안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이다. 단순히 세속에서 도피하여 힘들이지 않고 살아가는..

삶의나침반 2008.04.26

장자[17]

사람은 습한 데서 자면 허리 병이 걸려 죽을 수도 있으나 미꾸라지도 그런가? 사람은 나무 위에 오르면 무서워 벌벌 떨지만 원숭이도 그런가? 이 셋 중에서 누가 올바른 거처를 안다고 생각하는가? 民濕寢則腰疾偏死 鰍然乎哉 木處則췌慄恂懼 猿후然乎哉 三者孰知正處 - 齊物論 10 장자는 인간 중심의 시각에 의문을 제기한다. 모든 사물이나 현상에는 우열이 없다. 선악, 미추, 귀천의 구분은 인간이 자신들의 기준으로 나눈 것에 불과하다. 옛 사람들이 목숨까지 걸었던 도덕이니 인의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사회나 문화, 역사적 환경이 만든 임의적인 규범에 불과할 뿐이다. 장자의 관점은 철저히 상대적이며, 사물의 다원성과 다양성을 인정한다. 장자가 바른 거처, 바른 맛, 바른 아름다움에 대해서 예를 들며 사람..

삶의나침반 2008.04.22

장자[16]

큰 도는 일컬을 수 없고 큰 이론은 말할 수 없으며 큰 어짊은 어질다 하지 않으며 큰 고결함은 겸양이라 하지 않으며 큰 용기는 용감하다 하지 않는다. 大道不稱 大辯不言 大仁不仁 大廉不겸 大勇不기 - 齊物論 9 장자를 통해 진정한 표현, 사랑, 겸손, 용기에 대해 묵상하게 된다. 장자는 진리의 역설을 강조한다. 노자가 말한 '上德不德' '天地不仁'과 같은 의미다. 그러고 보니 나도 무척 말이 많아졌다. 말이 많아졌다는 것은 내 주장이나 고집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이다. 그것은 내 내면의 허기짐이나 결핍, 또는 공허함이드러나는 것에다름 아니다. 드러나는 것은 좋지만 그걸 말로 위장하거나 가식하는 것이 문제다. 장자가 말하는 지인(至人)의 경지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내 생각이나 내 주장이 틀릴 수도 있다는 의..

삶의나침반 2008.04.13

장자[15]

천하는 가을철의 가늘어진 털끝보다 크지 않다고 생각하면 태산은 더욱 작은 것이며, 어려서 죽은 갓난아기보다 오래 산 자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백 살을 살았던 팽조도 일찍 죽은 것이다. 천지와 내가 함께 태어났다면 만물과 내가 하나가 된 것이다. 天下莫大於秋毫之末 而泰山爲小 莫壽於상子 而彭祖爲夭 天地與我竝生 而萬物與我爲一 - 齊物論 8 앞에서 장자는 옛사람의 지극한 지혜에 대하여 설명했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분별과 선택을 초월하는 세계다.삶과 죽음, 낮과 밤, 좋음과 싫음, 취함과 버림이 반복되는 이분적 현상들에서 모든 것이 구별 없는 한 몸이라는 사실을 체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보는 관점에 따라서 사물이나 현상이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사물이 어떤 ..

삶의나침반 2008.04.06

장자[14]

옛사람들은 지혜가 지극한 데가 있었다. 어디까지 이르렀는가? 처음부터 사물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지극하고 극진하여 더 보탤 수가 없다. 그다음은 사물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처음부터 '너와 나'의 경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다음은 경계가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처음부터 시비가 존재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시비가 밝아짐으로써 도가 훼손되었고 도가 훼손됨으로써 사랑(유묵의 仁義와 兼愛)이 생긴 것이다. 古之人其知有所至矣 惡乎至 有以爲未始有物者 至矣盡矣 不可以可矣 其次以爲有物矣 而未始有封也 其次以爲有封焉 而未始有是非也 是非之彰也 道之所以훼?也 道之所以? 愛之所以成 - 齊物論 7 우리들 대개는 시비와 분별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무엇을 바라고 구하면서, 그것을 얻으면 기뻐하고 잃으면 슬퍼..

삶의나침반 2008.03.30

장자[13]

원숭이 주인이 아침 먹이로 알밤을 주면서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를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원숭이들은 모두 성을 냈다. 이에 주인은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고 말했다. 원숭이들은 모두 좋다고 했다. 狙公賦서 曰 朝三而暮四 衆狙皆怒 曰 然則 朝四而暮三 衆狙皆悅 - 齊物論 6 화 내는 원숭이를 보고 어리석다고 비웃지만 인간도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인간이 더 심하다. 장자가 말하려는 것도 바로 그런 것이리라. 우리는 대개 눈 앞의 이해득실에 얽매여 사물의 깊은 측면을 보지 못하고 겉모습에 따라 일희일비한다. 분별과 시비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어떤 특정의 주의나 관념, 종교, 이데올로기에 편집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볼 때 그것은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보다, 아침에..

삶의나침반 2008.03.23

장자[12]

사물은 본래 그런 것이고, 본래 옳은 것이다. 사물은 그렇지 않은 것이 없고, 옳지 않은 것이 없다. 고의적인 인위로 대립시킨 것이 들보와 기둥, 문둥이와 서시의 경우다. 우원하고 괴이하지만 도는 통하여 하나가 된다. 그것을 나누어 분별하는 것은 다듬어 다스리는 것이고 그 다듬어 다스리는 것은 훼손하는 것이다. 무릇 사물은 다듬어 훼손함이 없으면 다시 통하여 하나가 된다. 오직 달인만이 통함을 알고 하나 되게 한다. 物固有所然 物固有所可 無物不然 無物不可 故爲是擧 정與楹 라與西施 恢궤휼怪 道通爲一 其分也 成也 其成也 毁也 凡物無成與毁 復通爲一 唯達者知通爲一 - 齊物論 5 '생활의 달인'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다.일 솜씨가 어느 경지에 다다른 사람을 소개하는 프로인데, 어떤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재주를 ..

삶의나침반 2008.03.16

장자[11]

저것과 이것을 패거리 짓지 않는 것이 도의 추뉴(樞紐)라고 말한다. 추뉴가 고리의 중앙을 잡기 시작하면 응변이 무궁하다. 옳다는 것도 하나같이 끝이 없고 그르다는 것도 하나같이 끝이 없다. 그러므로 자연의 명증함만 못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彼是莫得其偶 謂之道樞 樞始得其環中 以應無窮 是亦一無窮 非亦一無窮也 故曰 莫若以明 - 齊物論 4 세상을 사는 데 옳고 그름의 구별이 없을 수가 없지만 어느 한 쪽에 매이는 것이 늘 병폐다. 거기서 시비와 분별이 생기고, 너와 나의 구분이 일어난다. 성인이 보는 눈은 그렇지가 않다.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니라, '이것'이면서 동시에 '저것'이기도 하다. 그런 관점이 도추(道樞)다. 앞에 나온 표현으로는 '성인은 따르는 것이 없으며'[聖人不由], '자연에 비추어 본다..

삶의나침반 2008.03.09

장자[10]

한번 육체를 받아 태어났으면 죽지 않는 한 다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물질과 서로 적대하고 또는 서로 따르면서 그칠 줄 모르고 달리는 말과 같으니 슬픈 일이 아닌가? 죽을 때까지 발버둥 치지만 공을 이루지 못하고 피로에 지쳐 늙어가면서 돌아갈 곳을 모른다면 슬픈 일이 아닌가? 一受其成形 不亡以待盡 與物相刃相靡 其行盡如馳 而莫之能止 不亦悲乎 終身役役 而不見其成功 날然疲役 而不知其所歸 可不哀邪 - 齊物論 3 장자의 이 부분을 읽다 보면 성경의 로마서 7장에 나오는 바오로의 탄식이 떠오른다.선을 바라는 마음과 악에 끌리는 경향 사이의 갈등을 설명하며 바오로는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줄 수 있습니까?"라고 탄식했다. 인간의 실존적 한계를 절절히 인식한 뒤라야 우리는 ..

삶의나침반 2008.02.21

장자[9]

이러한 정욕이 아니면 내가 없고 내가 아니면 정욕도 나올 곳이 없다. 이것은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시키는 자를 알지 못한다. 만약 진짜로 주재자가 있을 지라도 별다른 조짐을 알아차릴 수 없다. 非彼無我 非我無所取也 是亦近矣 而不知其所爲使 若有眞宰 而特不得其朕 - 齊物論 2 장자 사상이 여타 중국 철학과 다른 점이 제물론에 잘 나타나 있다. 장자는 현실 너머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 세계에 이르도록 사람들을 초대하고 있다.여기서 장자가 말하는 인간의 희노애락, 걱정과 한탄, 변덕과 공포, 아첨과 방종, 정욕과 교태 등은 당시 춘추전국 시대에 살았던 백성들의 고충으로 읽힌다.위정자들이 정치를 잘 함으로써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그 점이 유가와 도가가 갈라서는 지점인 것 ..

삶의나침반 2008.02.15

장자[8]

지금 나는 내 몸을 잃었다. 너는 그것을 아느냐? 아마 너는 사람의 음악은 듣지만 땅의 음악은 듣지 못하고 땅의 음악은 듣지만 하늘의 음악은 듣지 못하는 것 같다. 今者吾喪我 汝知之乎 汝聞人뢰 而未聞地뢰 汝聞地뢰 而未聞天뢰夫 - 齊物論 1 이것은 남곽(南郭)의 자기가 제자의 질문에 답한 말이다. 여기에 나오는 '吾喪我'는 장자 전체를 꿰뚫는 핵심 문장이다. 비단 장자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나 깨달음의 가르침에서의 핵심 의미이기도 하다. 앞의 '吾'와 뒤의 '我'는 서로 다른 '나'이다. '吾'가 '나'라는 존재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라면, '我'는 그 중에서도 초월되어져야 할 부분이다. 기세춘 선생은 이 '我'를 '내 몸'이라고 번역했는데, 단순히 육체적인 나를 뜻하지는 않는 것이라 본다. 나는 이것을 육(..

삶의나침반 2008.02.10

장자[7]

어떤 인위도 없는 고장의 광막한 들에 심고 그 곁을 할 일 없이 노닐고 그 밑에 누워보기도 하면 어떻겠나? 도끼로 찍힐 염려도 없고 아무도 해치지 않을 것이니 쓸모없다고 어찌 괴로워한단 말인가? 何不樹之於 無何有之鄕 廣漠之野 彷徨乎無爲其側 逍遙乎寢臥其下 不夭斤斧 物無害者 無所可用 安所困苦哉 - 逍遙遊 6 장자의 메시지를 쓸모 없는 나무에 비유하여 현실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혜자(惠子)의 말에 대한 장자의 답이다. 나무를 재목으로만 보는 혜자의 시각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데에 묶여 있다.효용성과 능률만을 강조하는 오늘날의 실용주의자들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보는 시각을 바꾸면 세상에 쓸모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리어 소용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더 가치 있고 소중하다..

삶의나침반 2008.02.03

장자[6]

송나라 사람이 은나라의 모자를 팔러 월나라로 갔소. 그러나 월인은 단발에 문신을 하였으므로 모자가 소용없었소. 요임금은 천하 인민을 다스렸고, 천하의 정사를 통할했소. 멀리 고사산으로 가서 네 신인을 만나보고 분수 북쪽으로 돌아와서는 그만 멍하니 천하를 잊어버렸소. 宋人資章甫適諸越 越人短髮之身 無所用之 堯治天下之民 平海內之政 往見四子 邈姑射之山 汾水之陽 요然喪其天下焉 - 逍遙遊 5 은나라에서는 필요한 모자가 월나라에서는 무용지물이 된다. 소용됨이란 것은 이와 같이 상대적일 뿐이다. 쓸모있다 없다는 이와 같이 사물이 유용함만을 따진다. 나라를 다스리는일 또한마찬가지다.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상대적 분별의 경지를 초월한 무차별의 세계다. 요임금은 고사산으로 신인을 찾아가 만나보고 그만 멍해지고 말았다. 여..

삶의나침반 2008.01.31

장자[5]

뱁새가 둥지를 트는 곳은 깊은 숲 속의 나뭇가지 하나에 불과하오. 들쥐가 황허의 물을 마시는 것은 제 양만큼에 불과하오. 초료巢於深林 不過一枝 偃鼠飮河不過滿腹 - 逍遙遊 4 요(堯) 임금이 허유(許由)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허유가 거절하며 한 유명한 말이다. 이 말에는 장자 사상의 핵심이 담겨있다고 나는 생각한다.노자 식으로 말하면 무욕(無欲), 자족(自足), 불감위천하선(不敢爲天下先)이다. 뱁새는 나뭇가지 하나에 만족하고, 들쥐 또한 한 모금의 물로 만족한다.왕위를 차지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연의 이치에 맞는 자족의 삶이다. 허유는 천하를 맡아달라는 요 임금의 말을 듣고 귀가 더러워졌다며 강물에 귀를 씻었다고 한다. 그 뒤에는 이런 이야기도 전해진다. 마침 소를 몰고 지나가던 소부(巢父)가 왜..

삶의나침반 2008.01.25

장자[4]

그러므로 이르기를 지인은 내가 없고 신인은 공적이 없고, 성인은 이름이 없다고 한다. 故曰至人無己 神人無功聖人無名 - 逍遙遊 3 이 말에 앞서 장자는 네 종류의 사람이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첫째 부류는, 소시민적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다. 그들은 돈 벌고 출세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세상이 가리키는 가치관대로 땀 흘리며 살아간다. 보이는 세계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세계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장자가 말하는 뱁새에 해당되는 사람들이다. 아마 세상 사람들의 99%가 이런 부류에 속할 것이다. 둘째는, 송영자(宋榮子)로 대표되는 세상적 명리를 넘어선 사람들이다. 그들은 세상의 칭찬이나 비난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영욕을 떠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도 분별하는 마음 조..

삶의나침반 2008.01.16

장자[3]

매미와 텃새가 대붕을 비웃으며 말했다. "내가 결심하고 한번 날면 느릅나무와 빗살나무까지 갈 수 있다. 어쩌다가 가끔 이르지 못하여 땅에 곤두박질할 때가 있지만 무엇 때문에 구만리 창공을 날아 남쪽으로 간단 말인가?" 조與學鳩笑之曰 我決起而飛 槍楡枋 時則不至 而控於地而已矣 奚以之九萬里 而南爲 - 逍遙遊 2 분별을 싫어하는 장자도 작은 지혜와 큰 지혜는 구별했다.그리고 작은 지혜의 특징은 비웃는 데에 있다. 노자도 말했다. 사람들이 비웃지 않으면 도(道)가 아니라고. 우리들 대부분은 사실 매미와 텃새들이다. 매미가 어찌 봄과 가을을 알 수 있겠는가. 구만리 창공을 날아가는 대붕을 이해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다만 크고 넓은 세계를 비웃지만 않아도 다행이겠다. 작은 지혜에서 큰 지혜로 넘어가는 데는 '아는 ..

삶의나침반 2008.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