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230

장자[167]

장자가 장례를 끝내고 혜자의 묘를 지나면서 따르는 사람들을 돌아보고 말했다. “어느 미장이가 자기 코끝에 백토를 바르니 파리 날개와 같아지자 석공으로 하여금 그것을 깎아내게 했다. 석공이 도끼를 휘두르면 바람이 일고 들리는 것은 깎이는 소리뿐, 백토가 다 깎여도 코는 상하지 않으며 미장이는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꼿꼿하게 서 있다 한다. 송나라 원군이 그 소문을 듣고 석공을 불러 말했다. ‘시험 삼아 과인을 위해 그것을 해보아라.’ 석공이 말했다. ‘신은 일찍이 그처럼 깎을 수 있었으나, 지금은 신의 기술을 시험할 상대가 죽은 지 오랩니다. 신의 짝인 미장이가 죽은 이래 신과 짝을 삼을 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도 혜자가 죽으니 더불어 담론할 사람이 없구나!” 莊子送葬 過惠子之墓 顧謂從者曰 영人堊慢其鼻..

삶의나침반 2011.06.03

장자[166]

농부는 농사일이 없으면 즐겁지 않고 장사치는 장사 일이 없으면 즐겁지 않다. 서민들은 아침저녁 생계가 마련되면 부지런하고 공장 일꾼들은기계와 기술이 있으면 기운이 난다. 돈과 재산이 쌓이지 않으면 탐욕자는 근심하고 권세가 더해지지 않으면 과시하려는 자는 슬프다. 이처럼 세력과 외물을 좇는 자들은 변란을 즐기고 때를 만나야 소용되므로 무위자연할 수 없다. 이들은 세상 형편에 따르며 순종할 뿐 변화에 물物처럼 자정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육체와 성정을 쫓기게 하여 만물을 골몰하게 하면서 종신토록 돌아올 줄 모르니 슬픈 일이다. 農夫無草萊之事 則不比 商賈無市井之事 則不比 庶人有旦暮之業 則勸 百工有器械之巧 則壯 錢財不積 則貪者憂 權勢不尤 則誇者悲 勢物之徒樂變 遭時有所用 不能無爲也 此皆順比於歲 不物於易者也 馳其形性..

삶의나침반 2011.05.26

장자[165]

황제가 말했다. “천하를 다스리는 일이 그대의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으나 청컨대 천하를 다스리는 일을 묻고 싶소.” 동자는 사양했으나 황제가 다시 묻자 입을 열었다. “천하를 다스리는 일이 어찌 말 먹이는 일과 다르겠소? 역시 말을 해치는 일을 제거하는 일일 뿐이오.” 황제는 머리 조아려 재배하며 천사라 호칭하였다. 그리고 대외를 방문하려던 계획을 그만두고 되돌아왔다. 黃帝曰 夫爲天下者 則誠非吾子之事 雖然 請問爲天下 小童辭 皇帝又問 小童曰 夫爲天下者 亦奚以異乎牧馬者哉 亦去其害馬者而已矣 黃帝再拜계首 稱天師而退 - 徐无鬼 3 황제가 산신령인 대외를 만나려고 구자산으로 갈 때 길을 잃고 헤매다가 말을 모는 동자(童子)를 만난다. 길을 묻고 대답하는 과정에서 범상치 않음을 알아본 황제가 어린 동자에게 나라를 ..

삶의나침반 2011.05.19

장자[164]

무후가 물었다. “선생을 뵙고자 한 지 오랩니다. 나는 백성을 사랑하고 의를 위해 전쟁을 종식시키려고 하니 옳은 일인지요?” 서무귀가 답했다. “아닙니다. 백성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백성을 해치는 시초입니다. 의를 위해 전쟁을 종식시키려 한다고 말하는 것은 전쟁을 일으키는 근원입니다. 군주께서 이와 같이 한다면 거의 성공할 수 없습니다. 무릇 아름다운 이름을 이루려는 것은 바로 미움을 담는 그릇이 됩니다. 군주께서 인의를 위하여 밀고 나가는 것은 인위에 머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武侯曰 欲見先生久矣 吾欲愛民 而爲義偃兵可乎 徐无鬼曰 不可 愛民 害民之始也 爲義偃兵 造兵之本也 君自此爲之 則殆不成 凡成美 惡器也 君雖爲仁義 幾且僞哉 - 徐无鬼 2 위나라 무후와 서무귀의 이 대화를 보며 양나라 무제와..

삶의나침반 2011.05.03

장자[163]

당신은 월나라의 유랑객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까? 나라를 떠난 지 며칠이 지나자 아는 사람을 만나면 기뻤고 나라를 떠난 지 열흘 한 달이 지나자 나라에서 본 듯한 사람을 만나도 기뻤고 일 년이 되자 비슷한 사람을 만나도 기뻤다고 합니다. 이는 사람을 떠난 지가 오래일수록 사람을 그리워함이 깊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인적이 그리운 적막한 고장에 숨은 자가 명아주가 족제비를 막고 있는 길에서 외로이 공허 속을 걸어가는 처지라면 저벅저벅 사람의 발소리만 들어도 기쁠 것입니다. 하물며 그 옆에서 형제 친척들의 속삭임과 기침 소리가 들린다면야! 子不聞夫越之遊人乎 去國數日 見其所知而喜 去國旬月 見其所嘗見於國中者而喜 及其年也 見似人者而喜 不亦去人滋久 思人滋深乎 夫逃虛空者 려조柱乎생유之逕 랑位其空 聞人足音공然而..

삶의나침반 2011.04.28

장자[162]

벌을 받아 발꿈치가 잘린 현자는 수놓은 옷을 바라지 않는다. 그는 세상의 비난이나 기림을 상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형수가 높은 곳에 올라도 두렵지 않은 것은 죽고 사는 것을 잊었기 때문이다. 두루 허물없는 사이여서 대접하지 않는 것은 남이란 생각을 잊었기 때문이다. 남을 잊고 생각대로 행동한다면 자연인이라 할 것이다. 介者치畵 外非譽也 胥靡登高而不懼 遺死生也 夫復습不饋 而忘人 忘人因以爲天人矣 - 庚桑楚 12 공자는 나이 70에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에 이르렀다고 했다.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장자가 생각대로 행동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일어나는 대로 행동해도 순리에 맞는 사람이 자연인이다. 남을 잊는다고 제멋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남의 평가나 세..

삶의나침반 2011.04.16

장자[161]

활의 명수 예는 작은 것을 맞히는 데는 기술자였지만 남들로 하여금 자기를 기리지 않게 하는 데는 졸렬했다. 반면 무위자연의 성인은 자연에는 기술자지만 인위에는 졸렬하다. 자연에 기술자이며 사람에게도 선량한 것은 온전한 사람만이 가능하다. 오직 벌레만이 벌레다울 수 있고 벌레만이 자연다울 수 있다. 예工乎中微 而拙於使人無己譽 聖人工乎天 而拙乎人 夫工乎天而량乎人者 唯全人能之 唯蟲能蟲 唯蟲能天 - 庚桑楚 11 '오직 벌레만이 자연다울 수 있다'는 데서 극단적 자연주의자로서의 장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연주의는 인간의 개입 없이 일어난 일들이 이성으로 오염된 것들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자연주의는 인위와 대척을 이루는 반문명주의다.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이 4대강 삽질로 깔끔하게 단장된 것보다 뛰어나다..

삶의나침반 2011.04.05

장자[160]

의식의 어지러움을 무찌르고 마음의 올가미를 풀어라. 덕의 얽매임을 벗고 도의 막힘을 뚫어라. 부와 귀, 출세와 위엄, 명성과 이익 이 여섯 가지는 의식을 어지럽게 하는 것이요, 용모와 행동거지, 색과 무늬, 기식氣息과 정의情意 이 여섯 가지는 마음을 묶는 것이다. 미움과 욕심, 기쁨과 성냄, 슬픔과 즐거움 이 여섯 가지는 덕성을 얽는 것이다. 물러남과 나아감, 거두어들임과 베풂, 지식과 재능 이 여섯 가지는 도를 막히게 하는 것이다. 이 네 종류의 여섯 가지가 흉중을 동요시키지 않으면 바르게 될 것이다. 바르면 고요하고, 고요하면 밝으며 밝으면 비고, 비면 인위가 없어 되지 않는 것이 없다. 徹志之勃 解心之繆 去德之累 達道之塞 富貴顯嚴名利 六者勃志也 容動色理氣意 六者繆心也 惡欲喜怒哀樂 六者累德也 去就取與..

삶의나침반 2011.03.28

장자[159]

거리에서 발을 밟았을 때 남이면 경솔함을 사과하고 형이면 좋은 낯빛으로 보고 어버이는 그냥 서 있다. 그러므로 지극한 예는 남이 없고 지극한 의는 사물이 따로 없고 지극한 지혜는 꾀가 없고 지극한 인은 친척이 없고 지극한 신의는 보증금이 없다고 말한다. 전市人之足 則辭以放오 兄則以구 大親則已矣 故曰 至禮有不人 至義不物 至知不謀 至仁無親 至信벽金 - 庚桑楚 9 지진과 쓰나미의 대재앙을 겪고 있는 일본 사람들의 차분한 태도가 화제다. 가족과 전재산을 잃은 비극 가운데서도 우리와 같은 발작적인 통곡과 오열은 보기 어렵다. 아무리 자연재해에 익숙하다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사람인 이상 속마음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이웃의 고통을 먼저 염려해주는 태도는 일본정신 또는 일본문화의 특..

삶의나침반 2011.03.20

장자[158]

시비를 일으켜 서로 이기려 하고 결과에서 명과 실이 일치하는가에 달렸다고 말한다. 이에 자기를 위주로 삼고 남들이 자기를 따르는 것이 절의라 생각한다. 이에 죽음으로써 절의를 지켜 보상하려 한다. 이런 자들은 채용되는 것을 지혜롭다 하고 채용되지 못하면 어리석다 하며 위에 통하는 것을명예라 하고 막히고 궁색한 것을 치욕이라 한다. 이시(移是)는 요즘 사람들이니 이는 대붕을 비웃은 메까치나 비둘기처럼 동(同)에서 동을 구하는 자들이다. 因以乘是非 果有名實 因以己爲質 使人以己爲節 因以死償節 若然者 以用爲知 以不用爲愚 以徹爲名 以窮爲辱 移是 今之人也 是조與學鳩 同於同也 - 庚桑楚 8 세상과 세상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은 장자의 특기다. 여기 나오는 '이시(移是)'는 솥 밑에 생긴 검댕이를 말한다. 이시는 열전도..

삶의나침반 2011.03.12

장자[157]

실체이지만 처한 곳이 없는 곳을 공간[宇]이라 하며 오래이지만 그 근본을 표시할 수 없는 것을 시간[宙]이라 한다.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며 나게도 하며 들게도 하지만 그 들고남이 그 형체를 나타내지 않는다. 이것을 이른바 '하늘 문'이라 한다. 그러므로 천문(天門)은 '무유(無有)'이며 만물은 이 무유에서 나온다. 유는 유를 창조할 수 없으니 유는 반드시 무유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무유는 유일자인 무유다. 성인은 이 유일자인 무유를 간직한다. 有實而無乎處者 宇也 有長而無本剽者 宙也 有乎生 有乎死 有乎出 有乎入 入出而無見其形 是謂天門 天門者無有也 萬物出乎無有 有不能以有爲 有必出乎無有 而無有一無有 聖人藏乎是 - 庚桑楚 7 뜻은 잘 모르지만 장자의 우주론으로 들린다.물론 서양과학의 우주론과는 접근 방법이..

삶의나침반 2011.03.06

장자[156]

안을 분명하게 한 자는 무명의 도를 행하고, 밖을 분명하게 한 자는 재용의 절도 있는 소비를 지향한다. 券內者 行乎無名 券外者 志乎期費 - 庚桑楚 6 '무명(無名)'이란 무위자연의 도를 말한다. 도덕경 32장에 '道常無名'이라는 말이 나온다. 드러내거나 과시하는 등의 인위가 아닌, 있는 그대로 존재함이다. 예(禮)나 의(義)같은 명분을 중시하는 유가에 대한 반대의 의미가 짙다. '재용의 절도 있는 소비'는 역시 도덕경 67장에 나오는 삼보(三寶)를 떠올린다. 노자는 자(慈), 검(儉), 불감위천하선(不敢爲天下先)을 세 가지 보물로 들었다. 자비, 검소, 겸손함이다. 노장철학에서는 검소하고 소박한 삶이 강조된다. 그것은 자신만이 아니라 남과 세상을 함께 값지게 한다. 도를 행하는 사람은 자연스레 그리 살 ..

삶의나침반 2011.02.25

장자[155]

물질을 재용으로 삼음으로써 몸을 기르고 사적소유를 걱정하지 않음으로써 마음을 살리며 안을 공경함으로써 밖을 통달하는 것이다. 만일 이러고도 온갖 악이 이른 것은 모두 천명일 뿐 인위가 아니라고 한다면, 이룸을 윤택하게 하기에 부족하고 영혼의 집을 윤택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備物以將形 藏不虞以生心 敬中以達彼 若是而萬惡至者 皆天也而非人也 不足以滑成 不可內於靈臺 - 庚桑楚 5 얼마 전에 병고와 가난에 시달리던 한 시나리오 작가가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 이런 쪽지를 이웃집에 붙여놓은지 며칠 뒤였다. 독거노인들의 외로운 죽음은 자주 접하지만 이번의 재능 있는 젊은 예술가의 죽음은 우리를 더 슬프고 안타깝게 한다. 사회안전망이 되어 있더라면, 얼마간의 기본소득..

삶의나침반 2011.02.17

장자[154]

지인이란 땅에서는 서로 먹여주고 하늘에서는 서로 즐겁게 하는 것이다. 至人者 相與交食乎地 而交樂乎天 - 庚桑楚 4 장자에서 지인(至人)은 절대자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도(道)와 한 몸이 되어 자유자재로 노니는 사람이다. 신인(神人), 성인(聖人)이라는 말도 같은 의미다. 얼핏 오해하면 장자의 지인은 산 속에 은둔한 도인의 이미지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여기 나오는 구절을 보자. '지인이란 땅에서는 서로 먹여주고, 하늘에서는 서로 즐겁게 하는 것이다.' 지인이 결코 홀로 깨달음을 추구하거나 자족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땅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산다. 서로 먹여준다는 것은 나 개인을 넘어 공동체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애쓴다는 말이다. 개인의 수행도 중요하지만 그것 역시 세상을 살리기 위한 바로섬이 되..

삶의나침반 2011.02.07

장자[153]

위생의 도란 능히 태일을 품고 잃지 않는 것이며, 능히 점을 치지 않고도 길흉을 아는 것이요, 능히 머무를 수 있고 능히 그칠 수 있으며, 능히 남들을 사면하고 자기에게서 구하며, 능히 융통 자재하고 바보처럼 진실하여 어린아이처럼 되는 것이다. 아이는 종일 울어도 목구멍이 쉬지 않는다. 화평이 지극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종일 주먹을 쥐고 있어도 손이 땅기지 않는다. 그 덕이 공손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종일 보아도 눈을 깜작이지 않는다. 외물에 편향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아가되 갈 곳을 모르고 머물되 처할 곳을 모르며 만물과 더불어 따라가며 그 물결에 함께하는 것이니 이것을 위생의 도라 한다. 衛生之經 能抱一乎 能勿失乎 能無卜筮而知吉凶乎 能止乎 能已乎 能舍諸人 而求諸己乎 能소然乎 能동然乎 能兒子乎 兒子終日..

삶의나침반 2011.01.30

장자[152]

어진 사람을 등용함으로써 백성들끼리 서로 알력이 생기게 했고, 지혜 있는 자를 임용함으로써 백성들이 서로 도둑질을 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사물을 셈하는 자는 백성을 행복하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백성들에게 자기 이익을 위해 너무 힘쓰게 함으로써 급기야 자식이 아비를 죽이고 신하가 군주를 죽이고 한낮에 도둑질을 하고 남의 담장을 뚫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러한 큰 혼란의 뿌리는 분명히 요순시대에 생긴 것이다. 그 폐해는 천대까지 남을 것이니 천년 후에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잡아먹는 시대가 반드시 올 것이다. 擧賢 則民相軋 任知 則民相盜 之數物者 不足以厚民 民之於利甚勤 子有殺父 臣有殺君 正晝爲盜 日中穴배 吾語汝 大亂之本 必生於堯舜之間 其末存乎千世之後 千歲之後 其必有人與人相食者也 - 庚桑楚..

삶의나침반 2011.01.23

장자[151]

노담의 제자 중에 경상초(庚桑楚)라는 자가 있었는데 노담의 도를 조금 아는 자로서 북쪽으로 외루산에서 살았다. 그는 신하가 되려고 지자(知者)인 척하는 자들을 물리쳤고 첩이 되려고 인자(仁者)인 척하는 자들을 멀리했다. 추인들과 더불어 살고 일꾼들과 일하며 따랐다. 삼 년이 지나자 외루 지방은 풍족해졌다. 老聃之役有庚桑楚者 偏得老聃之道 以北居外壘之山 其臣之晝然知者去之 其妾之설然仁者遠之 옹腫之與居 앙掌之爲使 去三年外壘大壤 - 庚桑楚 1 노자의 제자로 경상초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는 노자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사람이다. 그가 지자(知者)와 인자(仁者)를 물리쳤다는 것은 세상의 가치를 멀리했다는 것을 뜻한다. 지혜로운 자와 어진 자는 세상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다. 노자가 지(知)보다도 무지(無知)를 강조하는 ..

삶의나침반 2011.01.13

장자[150]

성인은 물질에 거처하지만 물질을 해치지 않는다. 물질을 상하지 않는 자는 물질도 그를 상하지 않는다. 오직 상하는 일이 없는 자만이 능히 남과 더불어 서로 보내고 맞이할 수 있다 할 것이다. 산과 숲, 언덕과 논밭은 나를 기쁘게 해 주지만 그러나 즐거움이 끝나기도 전에 슬픔이 잇는다. 나는 슬픔과 즐거움이 와도 막을 수 없고 가도 멈추게 할 수 없구나! 슬프다! 세상 사람들은 물질을 위한 여인숙에 불과하구나! 聖人處物不傷物 不傷物者 物不能傷也 唯無所傷者 爲能與人相將迎 山林與皐壤與 使我欣欣然而樂與 樂未畢也 哀又繼之 哀樂之來 吾不能御 其去不能止 悲夫 世人直爲物逆旅耳 - 知北遊 13 장자의 물(物)은 나 이외의 외적 대상 전체를 가리킨다. 인간의 감관과 사유의 대상이 되는 현상계의 일체 사물이나 사건들이다. ..

삶의나침반 2011.01.02

장자[149]

초나라 대사마에겐 허리띠를 만드는 사람이 있었는데 나이 여든이 되도록 조그만 실수도 없었다. 대사마가 말했다. "그대는 정교하구려! 도가 있겠지?" 공인이 말했다. "신에게는 지키는 것이 있습니다. 신은 나이 스물에 요대 만들기를 좋아하여 다른 것은 무시하고 요대가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이처럼 쓸모 있게 한 것은 쓸모없는 것을 빌려서 그 쓸모를 크게 한 것인데 하물며 쓸모없는 것도 없는 경지는 어떻겠습니까? 그런 경지면 무엇이든 쓸모 있게 되지 않겠습니까?" 大馬之추鉤者 年八十矣 而不失豪芒 大馬曰 子巧與有道與 曰臣有守也 臣之年二十 而好추鉤 於物無視也 非鉤無察也 是用之者 假不用者也 以長得其用 而況乎無不用者乎 物孰不資焉 - 知北遊 12 이번에는 허리띠 만드는 장인이 등장한다. 그는 여든이 되도록 ..

삶의나침반 2010.12.28

장자[148]

광요가 무유에게 물어 말했다. "무유! 그대는 있는 것이오, 있지 않은 것이오?" 광요는 질문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니 그 모양이 심원한 듯! 공허한 듯! 종일 들여다보아도 볼 수 없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고,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았다. 광요가 말했다. "무유는 지극하구나! 누가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겠는가? 나는 무를 가진 경지는 알았으나 무도 없는 경지는 이루지 못했다. 유가 없는 경지를 겨우 이룬 내가 어떻게 무도 없는 경지에 이르겠는가?" 光曜問乎無有曰 夫子有乎其無有乎 光曜不得問 而孰視其狀貌 요然空然 終日視之而不見 聽之而不聞 搏之而不得也 光曜曰 至矣 其孰能至此乎 予能有無矣 而未能無無也 及爲無有矣 何從至此哉 - 知北遊 11 우리는 상대적 개념으로 사물이나 말의 의미를 파..

삶의나침반 2010.12.19

장자[147]

도는 귀로 들을 수 없다. 들었다면 도가 아니다. 도는 눈으로 볼 수 없다. 보았다면 도가 아니다. 도는 입으로 말할 수 없다. 말했다면 도가 아니다. 형체를 지각할 수는 있지만 그 형상(形狀)은 형상(形相)이 아니다. 그러므로 도를 이름 붙이는 것은 합당치 않다. 道不可聞 聞而非也 道不可見 見而非也 道不可言 言而非也 知形 形之不形乎 道不當名 - 知北遊 10 도덕경의 '道可道非常道'를 떠올리게 한다. 도는 귀로 들을 수도, 눈으로 볼 수도, 입으로 말할 수도, 마음으로 알 수도 없다. 인간의 감각이나 인지작용을 초월해 있다. 도를 말하는 순간 도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도는 물을 수도 없다. 만약 누군가가 도를 물었을 때 무언가 대답한다면 그는 도를 모르는 자다. 아는 자는 말하지 않는다. 모른다고..

삶의나침반 2010.12.12

장자[146]

모든 사물은 사물을 무리 지어 차별하는 경계가 없는 것이니 사물에 경계가 있다면 언어로 일컬어진 사물의 경계일 뿐이다. 경계 없는 것(물질)을 언어로 경계 지은 것이므로 그 경계는 사물의 경계가 아니다. 차고 비고, 덜고 더한다고 말하지만 저들이 차고 빈다고 말한 것은 실은 차고 빈 것이 아니며, 저들이 덜고 더한다고 말한 것은 실은 덜고 더한 것이 아니며, 저들이 본(本)이요 말(末)이라고 말한 것은 실은 본말이 아니며, 저들이 쌓이고 흩어짐이라 말한 것은 실은 쌓이고 흩어진 것이 아니다. 物物者 與物無際 而物有際者 所謂物際者也 不際之際 際之不際者也 謂盈虛衰殺 彼謂盈虛 非盈虛 彼謂衰殺 非衰殺 彼謂本末 非本末 彼謂積散 非積散 - 知北遊 9 며칠전 나사(NASA)에서 새로운 생명체의 발견을 발표했다. 생명..

삶의나침반 2010.12.05

장자[145]

동곽자가 장자에게 물었다. "이른 바 도는 어디에 있소?" 장자가 답했다. "없는 곳이 없소." 동곽자가 말했다. "요약해 주시면 좋겠소." 장자가 말했다. "도는 땅강아지와 개미에게 있소." 동곽자가 말했다. "어찌 그처럼 낮은 곳에 있단 말이오?" 장자가 말했다. "도는 돌피와 참피에 있소." 동곽자가 말했다. "어찌 더욱 낮아지는 것이오?" 장자가 말했다. "도는 기와와 벽돌에도 있소." 동곽자가 말했다. "어찌 더욱 심해지시오?" 장자가 말했다. "도는 똥과 오줌에도 있소." 동곽자는 아예 입을 다물어버렸다. 東郭子問於莊子曰 所謂道惡乎在 莊子曰 無所不在 東郭子曰 期而後可 莊子曰 在루蟻 曰 何其何邪 曰 在제稗 曰 何愈其何邪 曰 在瓦벽 曰 何愈甚邪 曰 在屎尿 東郭子 不應 - 知北遊 8 한 스님이 운문..

삶의나침반 2010.11.27

장자[144]

사람이 천지 사이에 살아 있는 것은 날랜 백마가 문틈을 지나는 것처럼 홀연히 끝난다. 물이 흘러 갑자기 불어나듯 나타났다가 구름이 흩어지듯 소리 없이 돌아가지 않는 것이 없다. 이러한 변화를 삶이라고도 하고 또는 죽음이라고도 한다. 人生天地之間 若白駒之過隙 忽然而已 注然勃然 莫不出焉 油然?然 莫不入焉 已化而生 又化而死 - 知北遊 7 인생은 짧고 덧없다. 우리는 잠깐 이승에 나왔다 사라지는 무상한 존재들이다. 장자는 그것을 백마가 문틈을 지나는 짧은 시간에비유했다. 그 짧은 시간도 대부분이 힘겹고 고통스럽다.수고하며 이룬 모든 성과는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 이승에서 헛되지 않은 일이란 없다. 그것이 생명을 가진 존재의 실존적 한계다. 인생의 허무를 받아들여라.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담담해진다. 인생에 ..

삶의나침반 2010.11.18

장자[143]

순임금이 그의 스승인 승에게 물었다. "도를 터득하여 소유할 수 있을까요?" 승이 답했다. "네 몸도 네 소유가 아니거늘 어찌 네가 도를 소유할 수 있겠는가?" 순임금이 물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면 누구의 소유란 말입니까?" 승이 답했다. "이것은 천지가 너에게 맡겨놓은 형체다. 생명도 너의 소유가 아니라 천지가 맡겨놓은 음양의 화합이다. 본성과 운명도 너의 소유가 아니라 천지가 맡겨놓은 순리다. 자손도 너의 소유가 아니라 천지가 맡겨놓은 허물이다. 그러므로 가도 갈 곳을 모르고 처해도 머물 곳을 모르고 먹어도 맛있는 것을 모른다. 천지는 성대히 발양하는 기(氣)이니 어찌 체득하고 소유할 수 있단 말인가?" 舜問乎丞曰 道可得而有乎 曰 汝身非汝有也 汝何得有夫道 舜曰 吾身非吾有也 孰有之哉 曰 是天地..

삶의나침반 2010.11.08

장자[142]

너는 갓 난 송아지처럼 순진무구한 눈으로 보고 옛 법을 구하지 말라! 汝瞳焉如身出之犢 而無求其故 - 知北遊 5 처음 장자를 읽었을 때 이 구절이 유난히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책상 위에 붙여놓고 암송을 했다. 장자 33장에서 말하려는 것이 이 글 속에 다 들어있는 것 같았다. 갓 태어난 송아지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는 것은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라는 뜻이다.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세상의 가치관에 물들지 않은 순진무구한 마음이 필요하다. 노자가 어린아이의 마음을 강조하고, 예수가 어린아이가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도 마찬가지다. 사회 속에 존재하는 인간은 그 시대와 지역의 패러다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선 시대에는 유교의 틀로 세상을 인식했고 지금은 자본주..

삶의나침반 2010.10.30

장자[141]

천지는 위대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으나 말이 없고 사시는 밝은 법을 가지고 있으나 강론하지 않으며 만물은 생성의 이치를 가지고 있으나 유세하지 않는다. 성인은 이와 같은 천지의 아름다움에 근거하여 만물의 이치를 통달하는 것이다. 天地有大美而不言 四時有明法而不議 萬物有成理而不說 聖人者原天地之美 而達萬物之理 - 知北遊 4 오랜만에 강원도로 나가 별을 보았다. 들녘은 만추로 익어가고 산야는 단풍으로 울긋불긋했다. 계절은 어김없이 순환하고 만물은 변화를 거듭한다. 천지가 아름다운 것은 말 없이 이 모든 걸 행하기 때문이다. 무위(無爲)의 본(本)을 보여주고 있다. 자연미(自然美)란 인간의 손이 닿기 이전의 모습이다. 그러나 인간세상은 말도 많고 시끄럽다. 자연은 침묵하지만 인간은 소란하다. 인위적 아름다움은 자..

삶의나침반 2010.10.17

장자[140]

사람이 태어남은 기(氣)가 모인 것이다. 모이면 태어나고 흩어지면 죽게 된다. 만약 사생(死生)이 이사 가는 것이라면 우리는 또 무엇을 걱정하랴? 그러므로 만물은 하나지만 이것이 신기하면 아름답다 하고 냄새나고 썩으면 밉다 한다. 그러나 썩은 것은 다시 신기해지고 신기한 것은 다시 썩는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천하란 통틀어 하나의 기일 뿐이니 성인도 반드시 하나로 돌아간다고 말하는 것이다. 人之生氣之聚也 聚則爲生 散則爲死 若死生爲徒 吾又何患 故萬物一也 是其所美者爲神奇 其所惡者爲臭腐 臭腐復化爲神奇 神奇復化爲臭腐 故曰 通天下一氣耳 聖人故歸一 - 知北遊 3 인체는 기(氣)로 되어 있고, 생사란 기의 이합집산으로 보는 것이 동양의 사고방식인 것 같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생멸을 ..

삶의나침반 2010.10.10

장자[139]

그러므로 이르기를 도를 행함은 날마다 덜어내는 것이니 덜고 또 덜어 다스림이 없는 데 이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스림이 없음은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故曰 爲道者日損 損之又損之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也 - 知北遊 2 이 부분은 노자 도덕경에도 나온다.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 배움의 길은 날로 쌓아가는 것이며 도의 길은 날로 덜어내는 것이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면 무위의 경지에 이른다. 무위는 못함이 없는 함이다. 모든 종교나 지혜가 가르치는 바는비움과 무욕이다.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 겨울로 변하듯 완성은 결국 비움과 덜어냄이다. '배움의 길'에서 '도의 길'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여기서 학(學)과 도(道)가 대비되어 있는데, 학(學)이란 나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

삶의나침반 2010.10.03

장자[138]

'지혜'가 북쪽으로 원수의 상류에서 노닐다가 은분의 언덕에 올랐다. 여기서 우연히 '무위위'를 만났다. 지혜가 무위위에게 말했다. "나는 자네에게 물을 것이 있네. 어떻게 생각하고 꾀하면 도를 알 수 있는가? 어디에 처하고 무엇을 하면 도에 거처할 수 있는가? 누구를 따르고 누구에게 인도를 받으면 도를 얻을 수 있는가?" 세 가지 질문에 무위위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답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답을 몰랐던 것이다. 知北遊於元水之上 登隱분之丘 而適遭無爲謂焉 知謂無爲謂曰 予欲有問乎若 何思何慮則知道 何處何服則安道 何從何道 則得道 三問而無爲謂不答也 非不答不知答也 - 知北遊 1 이야기는 계속된다. 지혜는 답을 얻지 못하자 '광굴'을 찾아갔다. 그리고 같은 말로 광굴에게 물었다. 광굴은 말을 하려는 중간에 말하..

삶의나침반 2010.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