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다른 해에 비해 노루귀를 많이 보았다. 이른 봄에 피는 노루귀는 숲속의 요정이라 할 수 있는데 곱고 귀여운 요정들을많이 만나는 행운을 누린 셈이다. 노루귀 꽃 색깔은 흰색, 연분홍색, 청색이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강렬한 느낌을 주는 것은 청색 노루귀다. 사람들은 청노루귀라고 부르기도 한다. 청노루귀는 깊은 색깔이 인상적인데 산에서 청노루귀를 만날 때면 늘 박목월의 시 '청노루'가 생각난다. 청노루귀를 보면 한 마리 외로운 청노루가 푸른 하늘을 말갛게 바라보는 것 같다.
머언 산 靑雲寺
낡은 기와집
산은 紫霞山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나는 열두 굽이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이 작품을 쓸 무렵에 내가 희구한 것은 핏발 한 가락 서리지 않는 맑은 눈이었다. 시인이 이 시를 썼을 때의 마음가짐을 직접 설명한 말이다. '핏발 한 가락 서리지 않는 맑은 눈'에 대한 동경이 청노루라는 상상의 동물로 표현된 것 같다. 시인의 때 묻지 않은 자연과 순수에 대한 동경을 나는 산속에서 숨어 피는 청노루귀에서 읽는다. 엎드려 가만히 들여다 보면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도 보인다.